작년 4월, 3명의 10대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 일주를 떠났던 옥봉수씨 가족의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교사로 오래 봉직했던 옥봉수, 박임순씨 부부는 자녀들에게 보다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일과 학업을 중단하고 세계일주 여행을 시작했고 지난 여름 워싱턴에 잠시 들렀을 때 가족들의 이야기가 본보에 게재돼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그동안 수십 개국을 돌아보며 남다른 경험을 한 옥씨 가족은 현재 미국에 다시 들어와 휴식을 갖고 있습니다. 바른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했던 교사 부부가 큰 결단을 내리게 된 동기, 처음 가보는 낯선 나라에서 온 가족이 겪었던 고생과 기쁨, 시행착오와 환희의 얘기들은 독자들에게 큰 도전의식을 심어 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자녀교육 고민하다 ‘하프타임’결정
2000년 4월1일 배낭메고 인도로 출발
2008년 4월 1일 이른 아침, 우리가족은 봄 햇살을 받으며 배낭을 하나씩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5명 모두 서로 말은 없고 오로지 목적지를 향하여 거의 달리다시피 걸어가는 모습에서 비장한 각오를 넘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인도 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인천 국제공항 대합실이다. 지난 밤 긴장된 마음으로 잠을 뒤척이고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까닭에 비행기를 타기도 전부터 몸이 노곤하다. 탑승을 기다리며 잠시 의자에 피곤한 몸을 기댄다. 그 잠깐 동안, ‘왜 우리는 이곳에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 등등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 순간 지난 5년 동안의 일들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 이름은 옥봉수! 1962년생이니 40대 후반의 가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나를 ‘옥봉선생님’이라 불렀고 아이들은 나를 ‘옥봉아빠’라고 부른다. 우리 가족은 3명의 자녀와 부부교사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가운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참다운 신앙 가운데서 자신의 달란트에 맞게 느끼고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는 학원 대신 책을 읽도록 하고 힘들어도 스스로 하는 힘을 키워주려고 했으며 이러한 방법이 올바른 자녀교육의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을 거부하기에는 우린 너무 미약한 존재였다.
첫째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숫자로 매겨져 오는 자녀의 성적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오던 자녀교육의 방향을 수정하여 성적이라는 세상적인 공식에 맞추어 자녀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삶을 허용하는 순간부터 가정의 모습이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웃음과 대화가 사라지고 가정은 마치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한 훈련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문제인식은 계속 일어났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우리도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느냐?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는 것이 그래도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등등... 이런 논리 속에서 우리도 거의 3년을 힘들게 투쟁 아닌 투쟁을 하며 녹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 점차 우리 부부는 진정으로 올바른 부모의 역할은 무엇이며 작금의 한국적인 상황에서 마땅히 교사로서 해야 할 교육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 것은 무엇인가? 자녀를 위한 참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참다운 교육은 어떤 것인가? 지금처럼 남은 인생을 살아도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우리 부부는 현실에 더욱 솔직해지기로 하고 신앙 안에서 간절히 그 답을 찾기 시작하였다. 답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삶 가운데서 행하는 결단이 어려운 것이었다. 알고 있는 답을 따라 가는 길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결단과 희생이 요구되었다.
오랜 시간동안의 고민과 생각 끝에 믿음을 통해 결단하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교사직을 내려놓고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과 남은 생애를 새로 디자인 하는 ‘하프 타임’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자녀들과 우리에게 평생에 가장 귀한 선물을 주기로 생각하였다. 그것이 바로 1년 동안 ‘세계일주 가족배낭여행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자녀들에게 수많은 나라와 인종 그리고 문화를 폭넓게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다양성과 조화로움을 해석하는 능력이 키워 지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도 이런 하프타임을 통하여 남은 후반전 삶을 설계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세계일주 가족배낭여행은 만만한 여정이 아니다. 여행하는 기간과 규모면에서도 준비하는 것이 단순하지 않다. 또한 가족 배낭여행은 일반 패키지여행과 질적으로 다르다.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준비하여야 한다. 특히 배낭여행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가족에게 ‘세계일주 배낭여행’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준비해야하는지 처음부터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세계일주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 가족이 선택한 방법이 ‘연습 배낭여행’이었다. 연습 배낭여행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세계 일주를 시작하기 전에 여행에 필요한 실제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여행 시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경험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가족 모두가 배낭을 메고 직접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무 탈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적응능력이 되는지를 테스트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여행이기도 하다.
짧은 순간 대합실에서 지난날 들의 기억들이 살아나면서 지금 이 자리가 바로 인도-네팔로 한 달 동안 연습 배낭여행을 떠나는 첫날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마치 갓난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세상이 다르게 보이듯이, 우리는 지금 우물 안에서 바깥으로 나와 더 넓은 세계를 보기 직전의 바로 그 순간이다.
세계일주! 누구나 한번쯤 품게 되는 꿈! 그러나 가슴 속 깊숙이 숨겨놓은 채 세월 속으로 묻혀버리기 쉬운 꿈! 우리에게도 막연하게 가진 오랜 꿈이며 바램이었다. 그것은 쉽지도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으며, 새로운 세상에서 얻게 되는 경이로움으로 내 삶이 그리고 사람들이 새롭게 다가왔는가를... 그러기에 부족하지만 이 글을 쓴다.
평범한 우리가 도전하여 만났던 특별하지만 소박한 세상의 풍경들! 그 세상을 소개하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우리 가족은 이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선물을 나누고자 한다. 옥봉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힘든 지금의 현실에서도 잊혀져간 꿈을 생각해 보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 아름다운 동행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