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 이광희

2009-08-1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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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해, 너무 늦으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아

애증의 관계! 어찌 보면 애증을 느낀다는 말처럼 애매모호한 단어가 쉽지 않다. 애정과 증오가 함께 존재한다는 자체가 말의 유희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분명 애증의 관계가 존재함을 부정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둘러볼 때 애증관계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나게 만드는 두 사람이 있으니 바로 양김으로 불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일 것이다. 본인들 스스로도 그런 관계를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DJ의 경우 “YS가 생을 다할 경우 자신이 가장 슬퍼할 것이요 본인이 생을 다할 경우에도 YS가 가장 슬퍼할 것”이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했다고 한다. 30여년을 경쟁상대로 혹은 협력관계로 혹은 분노와 돌이킬 수 없는 미움의 관계로 지내온 당사자들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 지경이다.

그런 역사의 뒤안길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DJ의 건강이 위중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DJ가 위중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YS로서는 애증의 관계에 있던 20여년 해묵은 반목의 고리를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DJ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갔으며 병문안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의에 “이제 화해했다고 봐도 된다”는 화해의 메시지를 날렸을 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정을 해서 양김씨가 지난 13대 대선에서 분열하지 않고(정치학적인 입장에서 볼 경우 그때 발생한 분열은 양김씨 스스로의 분열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자신의 앞날을 모색하던 양김씨의 추종세력에 의한 분열이라는 말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나 된 모습으로 나아갔다면 양김씨는 애증의 관계가 아닌 애정의 관계가 되었을 것이며 한국의 역사도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어차피 흘러간 것으로 되돌리지 못하기에 많은 정치세력들에게 반면교사로 활용될 수나 있었으면 좋겠으나 이도 쉽지 않은 듯하다.

정치란 것이 어차피 무리를 형성하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비록 무리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한들 자신만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정치임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역사가 반면교사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해될만 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아이러니 하게도 양김씨의 화해를 통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 생겨난 것이다. 국민들은 이번 양김씨의 화해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YS가 DJ를 병문안 한 후 화해선언을 했지만 국민들은 흘러간 두 정객의 만남일 뿐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한 듯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조사한 ‘YS의 화해선언이 국민 통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조사 결과, 국민통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은 겨우 24.3%에 그쳤으며 62.7%의 국민들은 국민통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서로가 필요하고 힘이 있을 때 화해를 하고 서로 협력을 해야지 국민들을 이렇게 고생시키고 이제야 당신들끼리 화해하느냐’라는 의미가 담긴 듯하다.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진정 이러한 국민들의 뜻을 깨닫고 비단 한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정치의 양대 산맥으로 생각할 경우 현재의 여당과 야당의 다툼과 싸움을 그칠 수 있게 만드는 진정한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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