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 박승범
2009-07-31 (금) 12:00:00
CBS 이브닝뉴스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가 지난달 17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CBS는 물론이고 주요 신문과 방송은 ‘살아있는 전설’을 잃었다며 일제히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특히 CBS는 특집방송을 편성,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코멘트를 통해 ‘가장 신뢰받던 남자’ 월터 크롱카이트의 업적을 기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 특집방송에서 크롱카이트를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미국 헌법 권리장전을 가장 잘 대변한 사람이었다”고 표현했으며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이 아이콘을 잃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을 정도로 그가 미국 시민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의 죽음에 미국사회가 이렇듯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가 앵커의 4대 덕목으로 삼았던 정직, 성실, 믿음, 프로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군과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해 생생한 현장을 전했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과 아폴로호 달 착륙을 보도하면서 그는 미국 시청자들의 머리속에 기억됐다. 아무리 큰 사건을 전달하더라도 그는 절대 앵커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침착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전하면서 그는 예의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대통령의 죽음을 알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앵커는 울어서는 안됩니다”라면서 눈물을 보여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일에 대한 투철한 프로정신 모두를 엿보게 했다.
그의 죽음에 일제히 애도하는 미국사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저널리즘을 돌아보게 된다. 미국인들은 크롱카이트에 대해 “대통령의 말은 못 믿어도 월터 크롱카이트의 말은 믿을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한국에서도 그와 같이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저널리스트가 과연 있을까. 인지도가 상승하면 정치계로 진출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는 한국 언론계 현실에서 크롱카이트는 진정한 언론인의 이상형을 제시한다. 그도 정치계에 입문하라는 수많은 유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언론인으로 남았다. 정치인들의 추한 행태를 비판하던 언론인이 또다른 한명의 추한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지 않다. 한국 언론계에서도 ‘믿음직한’ 한국판 ‘월터 크롱카이트’의 출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