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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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회 수 상 - 아름다움과 사랑에 취해 하십시오

2009-06-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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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50년 전 일입니다. 서울 단성사 극장 앞에”19xx년은 벤허의 해”라는 슬로건 아래 챨톤 헤스톤의 근엄한 표정이 그려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 앞을 걸어 가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 보며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왜 유명한 예술가 대접을 못 받나 의아했습니다. 그 때 저는 간판 작품과 예술 작품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예술가가 어떤 아름다움에 취해 작품을 만들지 않고 돈 벌기 위해서든지 경쟁에 이기려는 마음에서 작품을 만들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 그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두고두고 남을 작품들은 사랑에 취한 결과들입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 누구에게 향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 … 그 사랑에 취해 혼신을 쏟을 때 나오는 것이 예술입니다. 누구나 그 작품을 볼 때 어떤 붓으로 그렸고 어떤 기술을 썼나 보다는 얼마나 아름다움에 취해 그렸나, 얼마나 사랑에 취해 그렸나를 보게 됩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며 만든 음악보다는 음악에 대한 사랑, 그 무엇에 대한 사랑이 활활 타는 가운데 만들어진 음악은 세월을 두고 우리의 마음을 적십니다만 그렇지 않은 음악은 잠시 시대상을 반영할지는 몰라도 잠시 마음을 흔들고는 잊혀집니다. 40세에 목사 안수 받고 혼신의 힘을 다 해 목회했습니다. 남이야 보던 말던 정성을 다 했습니다. 40-50년 전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CD로 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고 향수가 일면서도 목회에 정성과 시간을 쏟느라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2월 1주일 휴가를 가는데 어느 분이 흘러간 노래 CD 를 몇 장 빌려 주셔서 장거리 운전하면서 들었습니다. 자뭇 향수 속에 가벼운 설렘까지 느끼며 두어 시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옛날의 그 느낌은 별로 없고 들을 가치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헨델의 메시야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세 시간을 꼬박 들었습니다. 청년시절 처음 들을 때 느끼던 감동은 들을 수록 더 함을 실감했습니다. 베토벤을 들었습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들을 수록 진수를 맛 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는 아름다움에 취해, 사랑에 취해 만든 작품이고 하나는 남을 의식하며 경쟁에 이기려, 돈을 더 벌려고 만든 작품이기에 그렇지 않을까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십니까? 왜 하십니까? 아름다움에 취해, 사랑에 취해 하시나요 아니면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남을 눌러 이겨 보려고, 아니면 돈만 생각하며 하십니까? 목회를 하십니까? 주님께 향한 사랑에 취해 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교회와의 경쟁에 이겨보려 교회성장 세미나에 참석해가며 바쁘게 머리를 굴려가며 하십니까? 성가대를 하십니까? 왜 하십니까? 어느 누구보다 아니면 어느 교회 성가대보다 더 잘 해 보려고 하십니까? 단성사 전면에 있던 벤허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리십시오. 사랑에 취해 하십시오. 아름다움에 취해 하십시오. 남을 이겨봐야 남는 것이 별로 없지만 사랑에 취하면 남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갑니다. 풍성해집니다. 더 아름다워집니다. 남까지 윤택하게 합니다.


김성수 목사
<페닌슐라 한인침례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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