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이틀 후로 다가왔다.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 손꼽히는 설은 본래 조상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먼저 가신 조상님들과 자손들이 함께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설날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동안 바쁜 일상생활로 인해 뵙지 못한 고향에 계신 부모님, 친척들을 만나고 차례를 올리는 등 함께 명절을 보내기 위해 민족 대이동을 떠난다. 이를 통해 우리 한국인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과 동질감을 갖는다. 이러한 일체감과 동질감은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명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이곳 이역만리 미국땅에서도 설날에는 각 지역 한국학교 등지에서 세배의 의미를 배우고 설날 음식을 나누는 등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을 한인 2세, 3세들에게 알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는 상항한국학교, 이스트베이 지역에서는 리치몬드 무궁화한국학교, 플레젠튼 트라이밸리한국학교, 산호세 지역에서는 쿠퍼티노 실리콘밸리한국학교, 산호세 알마덴한국학교가 각각 학교별로 오늘(24일) 우리 전통문화를 교육한다. 세배의 의미를 가르치고 민속놀이인 제기차기, 윷놀이를 함께 즐기며 떡국 등 설날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베이지역 설날 행사에 덧붙여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되도록 많은 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큰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류사회에서 통용하고 있는 ‘중국인의 설날(Chinese New Year)’이 아닌 ‘아시안의 설날’, 더 나아가 ‘한국인의 설날’로도 불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민족도 우리 고유의 설날을 지내왔다고 여겨지고 있다. 설날을 지내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우리 민족 자체적으로 자연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 ‘수서’를 보면 신라인들이 새해 아침 서로 예를 차려 축하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며 ‘일월신(日月神)’에게 절하고 예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고 책계왕 2년(287년) 정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했다고 전하고 있다.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설날이 9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고 조선시대에는 설이 4대 명절의 하나로 여겨져 이미 이때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자리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