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2-13 (토)
크게 작게
숙제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노선표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가도 가도 한참을 남은거리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참, 인연이란 것이 이상하네. 내가 어떻게 그곳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 동암역에 내려 율도 가는 버스를 탔다. 종점에서 내려 전화를 걸었고,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왠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은 예지엄마를 만났다. 인터넷에서 내 글을 읽고 나에게 처음 이 메일이 보낸 지 1년 6개월 만에 직접 만나는 거다. 예지도 승욱이처럼 시청각 장애인이다. 한국나이로 열네 살, 마침 찾아간 날이 학교수업이 없는 날이라 예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반지하집에 작은 창문 하나로 빛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인 예지네집, 방에 누워 있다가 내가 인사하려고 손을 잡으니 손장난을 치자고 나를 끌어당긴다. “어머, 승욱이 엄마한테는 못살게 안구네요.” “저를 아는 것 같은데요?” 예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 승욱이 엄마야, 우리 승욱이도 예지하고 똑같은 시청각 장애인이란다. 너 승욱이랑 많이 닮았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예지는 계속해서 손바닥을 치고 또 등을 긁으라고 몸을 나에게 밀어붙인다. 등을 살살 긁어주며 말을 건네니 내 말을 알아듣진 못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란 것을 확인하고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한다. ‘저 모습. 승욱이가 와우이식 수술하기 전의 모습이다.’ 비장애인의 경우 14세이면 중2 여중생인데 몸은 엄마보다 더 크고 힘도 엄마보다 더 세 보인다. 자그마한 엄마와 지병으로 많이 수척해 있는 아빠의 모습에 내 마음이 괜히 미안해진다.


그냥 예지 부모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나만큼이나 사연이 가득한 예지네집, 이런 저런 말씀에 그저 귀 기울여주고 함께 안타까워하고 승욱이의 경우를 이야기해 드리는 게 전부다. 한국은 시청각 장애인의 수가 정확히 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통계상으로 천명 가량이 있는 것 같은데 다들 드러나지 않으니 장애코드조차 없어서 혜택을 받기도 너무 까다롭다고 나에게 토로하신다. 학교수업도 선생님이 예지만 봐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선생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그리고 부모도 힘들고.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을까. 예지가 갑자기 몸을 휘젓기 시작한다. 이유 없이 자기 머리를 때리고 몸을 심하게 흔들기 시작이다.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다. ‘저 모습, 정말 승욱이와 많이 닮았다.’ 엄마가 손을 잡고 작은 거실로 예지를 데리고 나갔다. 계속해서 괴성을 지르고 자학하고 엄마 몸을 휘두르고 난리도 아니다. 밤낮이 바뀌어서 새벽 2시만 되면 고성을 지르며 우는 통에 엄마아빠가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신다고 했다. 게다가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으니 애를 마냥 울리고 있을 수가 없어 덩치 큰 아이를 안고 업고 어르고 밤을 지샌다고 했다. 예지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는데도 예지가 너무 소리를 지르니 대화 불가능이다.

해도 어둑어둑해지고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이 멀어서 겸사겸사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제를 마무리하러 갔다가 더 큰 숙제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쓰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눈치 없는 남편은 “한국오자마자 너무 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내가 몸이 아파서 이러는 줄 알아? 마음이 아파서야!” “누가 뭐래? 당신보고 누가 나쁜 말 한거야?” “차라리 나쁜 말을 듣고 온 것이 나은 것 같아.”

다음날까지 호된 몸살을 앓고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단체를 만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나님, 왜 나를 이 시간에 이곳으로 보내셨어요. 제가 무슨 사회복지사입니까? 상담가입니까? 아니면 재력가입니까?’ 이렇게 물으며 난 다른 장애가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뭔가 숙제를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지.

김민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