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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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 -누가 나를 통제할까?

2008-06-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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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달웅 목사 <실로암침례교회>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하였는지 여부에 따라서 나타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자랄 때 부모님의 학대 혹은 과잉보호를 받아서 훈계와 절제와 인내로 신앙과 인성을 키워 나가는 방법이 아닌 세상교육 방법인 자율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개인 중심으로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면 자신도 모르게 주의력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하여 귀한 말씀을 들으나 마음에 두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자신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무절제한 삶으로 다른 사람과 충돌이 심하고 분도 많이 내고 화를 잘 내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형상이 교회까지 들어와서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하고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아니하면 떠나버리고 혼자도 아닌 자기와 뜻이 맞는 몇몇 사람과 더불어 몰려가는 작태를 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별히 이런 교육은 일찍이 인간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통해 세상 교육에 영향이 미친 것으로 우리가 선택할 힘도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흥미중심, 놀이중심, 적절한 활동 중심적 교육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조금 자라서는 자율적으로 개인 중심으로 판단하면서 자랄 수 있게 한 교육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국가나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악한 현상은 이 문제에 관한 인식부족으로 일찍이 치료방법을 개발하는데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조차 다분히 세상에 영향을 받아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한 결과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무엇인가 통제를 받아야하는데 과연 무엇으로 집중력이 부족하고 산만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고 말을 듣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부모님에게 바른길로 양육을 받지 못했으니 오늘 어른 된 우리도 어렵습니다. 학교 선생님 혹은 선배와 친구들은? 가르치는 대부분 사람이 다 비슷한데, 그러면 세상 법으로 가능할까요?
어느 정도 바랄 수 있지만 현실을 볼 때 의지하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란 말이 답이 되겠군요. 어떤 모양이든 가까이 있어서 나의 행하는 모든 것을 아는 위치에 있어야 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로 하여금 행동을 하게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두뇌라고들 하지요. 그 보다 더 좋은 답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 마음에 각성과 결단으로 우리의 하는 행동을 통제하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어서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게 합니까?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119:11절) 어떻게 마음에 말씀을 둡니까? 주의력을 가지고 집중하며 인내력을 가지면서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든지 읽으면 됩니다.
말씀이란 성경 말씀입니다. 이를 계명, 규례, 율법, 법도, 입의 법, 율례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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