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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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테크놀로지에 앞서 가는 감성

2008-06-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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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목사/페닌슐라 한인치례교회담임

어느 과학 공상 영화에 진짜 사람과 도저히 구별할 수 없게끔 피부, 머리털, 음성, 언어, 눈 표정, 손톱, 동작 등을 갖춘 인조인간들이 진짜 인간과 공존하는 세계가 그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인조인간 남자와 진짜 인간 남자 둘이 광야를 걸어 가다가 인조인간이 진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인조인간은 암만 걸어도 피곤을 모르고 잠을 안자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데 너희 진짜 인간은 조금만 일하면 피곤해서 쉬어야 하고 밤엔 잠을 자야하고 때를 맞춰 먹어야 하고 화장실을 가야 하니 참 불편하겠다.”
모든 것이 컴퓨터화 되어 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마저 첨단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 가기가 힘듭니다. 이제는 셀폰으로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TV도 시청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미리 방안에 에어컨을 틀어놓아 집에 들어갈 때 즈음엔 방안의 온도가 알맞게 되고 밥솥 스위치를 켜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식사를 하게끔 리모트로 원격 조정합니다. 로봇이 방안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는 시대가 왔고 언젠가는 골치 아픈 진짜 인간 대신 생각과 모습이 내 맘에 꼭 맞게 프로그램 되고 제조된 맞춤 인조인간과 결혼해 살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는 판이니 정말 과학의 발달은 놀랍습니다.
당신은 이런 시대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다 보니 무엇 때문에 사는지는 잊고 길 잃은 인생이 되지는 않으셨는지요. 당신은 아직 안개 속을 걷는 낭만이나 이른 아침 호숫가의 신선한 공기를 심호흡하는 맛을 즐기고 있으신지요.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이나 ‘대전 발 0시 오십분’의 아릿함을 오히려 비웃어 버릴 만큼 감성이 둔해지고 테크놀로지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으신지요.
최근 읽은 시 한 토막입니다. “우리는 이제 아늑한 밤을 잃었다. 지구의 반대쪽 사정까지 안방에서 환히 들여다보여 마음 쉴 겨를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때 얼굴가리고 울고픈 뱃고동 슬픈 부두도 없다… 이별의 아릿한 낭만도 온 세계의 컴퓨터가 싱겁게 지워 버리고 이제 우리는 눈물도 말랐다.” (왕수영 ‘우리는 이제’에서)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이 편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더 편해진 나날에 더 많은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인생을 더 깊이 살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 첨단기술을 따라 가느라 시간을 다 쏟고 거기에 취하느라 감성과 눈물까지 대가로 치른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쌍하고 어리석은 삶이라 하겠습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창출되는 여유를 하나님이 주신 감성과 이성, 그리고 지성을 더 아름답게 조화시켜 가는데 사용하여 보다 여유 있고 보다 보람 있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는 삶,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 않은가요?
잠깐, 하루가 다르게 낮이 길어지고 나무마다 옷의 볼륨을 더해가는 계절에 잠간 일손을 멈추고 웃어 보십시오.
참기름과 라면이 대판 싸웠습니다. 잠시 후 경찰이 와서 라면만 잡아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참기름이 고소해서랍니다. 한 시간 후 경찰이 또 와서 참기름마저 잡아 갔습니다. 왜냐구요? 라면이 불어서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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