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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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법 상식-특별명령 40호

2008-05-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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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오후 필자의 한 라티노 친구가 한인타운에 있는 한 주점에서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 이 친구의 아들이 웨스턴 블러버드와 5가 교차로 인근에서 주차할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몸에 갱 문신을 한 머리를 박박 깎은 다른 라티노 청소년 여러 명이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 친구의 아들과 그 갱들은 잠시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갱 청소년들이 차로 달려들어 문을 열고 필자 친구의 아들을 끌어내 칼로 찔렀다. 다행히도 친구 아들이 공격을 팔로 방어하면서 팔에만 부상을 입는데 그쳤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냥 묻혀버렸다. 한인타운에서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경찰국장이 나서서 갱단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LA에서 갱범죄는 최근 놀라운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별명령 40호’는 경찰관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할 때 이민신분에 대해 묻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의 지지자들은 무고한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추방을 우려해 범죄 신고를 꺼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측에서는 LA지역의 많은 갱단원들이 불법체류 외국인들이고 카운티 구치소도 불법 외국인들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갱단원들에 대해서는 이민신분을 확인해 추방함으로서 커뮤니티를 보호할 의무가 경찰에게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월 사이에만 남가주 지역 구치소들에서 이민신분이 불법으로 확인된 체포자들이 모두 2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특별명령 40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무고한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경찰에 범죄를 신고하기 꺼려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불법신분이 들통 날 것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갱들의 보복이 두려워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경찰 규정은 심각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흑인 및 백인과 라티노간, 경찰과 경찰간, 공화당과 민주당간, 그리고 친이민 그룹과 반이민 그룹간 대결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한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이에 대해 알고 있는 한인들도 ‘특별명령 40호’에 대한 일반적인 편 가르기 양상에 따라 의견이 갈려 있다. 나이가 드신 한인들은 신분이 확인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범죄자들뿐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 대부분 ‘특별명령 40호’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젊은 세대 한인들은 만약 경찰이 자유롭게 이민자들의 이민신분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마치 2등 시민으로 차별 취급을 받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별명령 40호’를 철폐하는 것이 LA 시의 모든 사회적 악의 근원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갱단원에 대해서만은 이민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개정하는 것은 논란이 많은 이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213)388-9891
이종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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