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 맹점, 영세업주 울린다
바지 하나에 5,400만달러의 터무니없는 배상금을 한인 세탁업주에게 요구, 세계적 관심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로이 피어슨 워싱턴 DC 행정판사의 소위 ‘바지 소송’은 미국에 만연돼 있는 ‘소송권 남용’ 관행과 일부 소비자 보호 규정의 문제점들을 드러내 준 ‘사건’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주 이틀간 열린 재판에 따른 평결이 이번 주 내로 나올 예정인 가운데 이번 소송이 던져준 이슈와 문제점, 파장을 점검해본다.
엉성한 법규정 배상금 타내기 악용
시민단체들 “소송권 남용 이번에 경종
업주 억울하지만 조기 해결 못해 아쉬움
이번 ‘바지 소송’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일부 소비자 보호법 규정이 어떻게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괴롭히고 배상금을 얻어내는데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라고 관련 단체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스몰 비즈니스 권익단체인 전국독립사업자연맹(NFIB)과 부당 소송행위 방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배상법개혁협회(ATRA) 등 관련 단체들은 즉각 이번 소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소송에 항의하는 배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문제점
ATRA는 워싱턴 DC 소비자 보호법의 불합리성이 이번 소송에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ATRA는 이번 소송이 일부 소비자 보호법 규정의 불합리성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라며 평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소송은 이미 모든 스몰 비즈니스 업주와 소비자, 납세자들에게 피해를 준 사법 시스템 남용의 전형적 케이스라고 주장했다.
셔먼 조이스 ATRA 회장에 따르면 워싱턴 DC의 소비자 보호법이 소송 변호사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것은 기본적 배상 외에 변호사 비용 지불도 규정하고 있기 때문. 또 많은 판사들이 소송 제기자가 실제 상해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이나 또는 부당하거나 사기성의 상행위에 당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도록 법 적용을 느슨하게 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소송 제기자인 피어슨이 문제 삼고 있는 ‘만족 보장’ ‘당일 서비스’ 문구가 분실된 바지와 상관이 없음에도 워싱턴 DC의 소비자 보호법은 하루 1,500달러씩의 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정신적 피해와 렌터카 비용까지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소비자 보호법의 악용을 막고 정직한 영세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소송 제기인이 업주의 사기성 광고나 홍보에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고의적 사기 행위를 제외하고는 배상 액수를 사업자가 지불할 능력이 있는 한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볼 때 피어슨의 케이스에서 정진남씨 부부가 지불해야 할 배상액은 새 양복 값과 수선비, 그리고 적당한 변호사 비용이 된다.
■영향
이번 ‘바지 소송’과 같은 소송권 남용은 스몰 비즈니스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큰 해를 끼치고 있으며 소송의 승자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막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게 소송권 남용 개혁론자들의 주장이다.
전국독립사업자연맹(NFIB)의 타드 스타틀마이어 회장에 따르면 ‘소송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손해배상 소송 시스템의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4인 가족 기준으로 가구당 9,827달러에 달한다는 퍼시픽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2003년 한 해에만 미국 내에서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나온 배상금 지불 판결이 총 2,460억달러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다.
전문가들은 악용되는 소비자 보호법이 전면적인 수술을 받을 가능성은 현재 적다고 보지만 악의적인 소송으로 소규모 사업자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
■파장
이번 케이스의 파장은 해당 업주 정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한인 스몰 비즈니스 업주들이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사안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소송 제기자의 횡포에 휘둘린 억울한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초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커져 버려 안타깝다는 말이다.
미국과 전 세계의 주목 속에 심리가 진행되면서 여론이 피어슨 판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이미 업주 정씨가 입은 피해는 크다. 변호사 비용과 사업상 손실은 둘째 치고 이민자 신분으로 성공의 꿈을 키우던 이들에게 이번 사건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미국생활에 성공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사업 환경과 법률 시스템을 숙지해야 한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전문 체제를 한인사회가 갖출 필요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종하 기자 ·워싱턴 DC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