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영수 목사(새크라멘토 영락교회)
많이 소유한 사람이 부자가 아닙니다. 많이 주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지만 부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부자인데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요함이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오천 명의 몫을 혼자 먹는 사람과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빈들에서 모두 배고파 있는 무리들을 위해 한 소년이 자신의 점심으로 준비했던 오병이어(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주님께 드림으로 남자 장정만 오천명이 먹고도 남은 사건은 먹은 자보다는 주는 자가 받은 엄청난 축복일 것입니다.
나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게 생각되어 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삼립빵(그당시는 가장 많이 먹는 빵이었음)’ 하나 매점에서 사 가지고 혼자 몰래 화장실에 가서 숨어서 먹었던 기억입니다. 그 당시는 군대생활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대부분 나와 같았겠지만 지금도 그 때가 생각날 때면 혼자 웃습니다.
삼립빵 하나지만, 우리 내부반에서 가장 배고파 했던 ‘김’일병 만이라도 살짝 불러 반쪽이라도 나누어주었더라면 나는 지금 훨씬 성숙한 사람이 되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여유 있는 사람이고, 그가 진정한 부자일 것입니다.
척.스윈돌 목사가 쓴 ‘ Improving your serve’ 라는 책에 보면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한 미군 병사의 이야기인데 한 추운 겨울날, 미군 병사가 길을 가다 보니까 전쟁의 피해로 초라한 모습의 한 소년이 빵집 앞에 서 있습니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까 요리사가 빵을 반죽하고 있어요. 빵을 막 쪄내 가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앞에 서서 소년이 먹고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미군 병사가 지나가다가 차를 멈추고 내립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 저 빵 먹고싶니?’
‘네, 먹고 싶어요!’
병사는 소년이 보는 자리에서 하나만 산 것이 아니라 1다즌, 12개를 사서 소년의 품에 안겨 줍니다. 이 소년이 너무너무 놀랍니다. 감격합니다. 그리고 이 병사가 돌아가는데 옷을 붙잡고 이 소년이 묻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하나님이세요? Are you God?’
그날 이 소년은 정말 행복했을 것입니다.
소년이 12개의 빵을 가슴에 품고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러나 더 행복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빵을 건네준 병사입니다. 병사는 차를 타고 가면서 그 소년이 한 말이 메아리 쳤을 것입니다. ‘Are you God? 아저씨는 하나님이세요?’
그날 밤 더 행복해 하셨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소년을 지켜보고, 이 병사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이 광경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그래, 너는 내 아들이야, 내 딸이야. 너는 나를 닮았어’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