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전 재향군인회 동부지회장
2007-03-21 (수) 12:00:00
친목 단체 수준에 있던 워싱턴 재향 군인들의 모임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회로 승격시키고 6년간 회장을 역임한 후 얼마 전 물러난 김홍기 전 회장.
“신임회장단이 잘 해줄텐데 떠난 나한테 뭐 들을 것이 있느냐”며 인터뷰 요청을 몇 차례나 거부하다 겨우 입을 연 김 전회장은 조국 사랑에 청춘을 바친 노병의 가슴을 그대로 드러냈다.
2001년 3월 창립된 동부지회는 다음해인 2002년 6월 뉴욕 북동부지회를 재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는데, 이전에 내분으로 없어졌던 뉴욕 지회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김 전회장이 헌신적으로 산파역을 감당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 내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지회는 모두 5개. LA의 서부지회, 애틀란타의 남부지회, 시카고의 중부지회, 뉴욕 북동부지회 등이 워싱턴 동부지회와 함께 일원화 돼있는데 김 전회장은 “상급 기관의 역할은 아니지만 동부지회가 각 미주 지회 가운데 핵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에 미주 재향군인 단체들을 발전적으로 정비하고 통합할 수 있었던 김 전회장의 치밀한 조직력과 추진력은 화려한(?) 군 경력을 들여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육군종합학교 17기, 포병 간부 9기생인 그는 한국전이 한창이던 51년 2월19일 포병장교로 임관했다. 강원도 철의 3각지대에 바로 투입됐고 혁혁한 무공으로 화랑훈장을 받았다.
1968년부터 70년까지는 월남전에도 참가했고 한미연합 사령부 창설 요원으로 작전통제 본부장을 지냈다.
이후 주 태국대사관에서 국방무관으로 3년간 있던 그는 1979년 전역, 사우디 한양건설 간부로 있다 82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 이민을 왔다.
미국서는 개인 사업을 했지만 푸른 옷의 군인정신은 퇴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미 동맹이라는 환경을 배경으로, 두 나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도록 애썼다.
김 전 회장은 “증가되는 반미 무드로 한미 관계가 위축돼 가는 것을 보며 힘들 때도 있었다”며 “동부지회가 양국 재향군인들의 전우애를 기반으로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고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한국전 휴전을 기념하는 7.27 행사. 미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DC에서 단독으로 하던 기념식을 3년 전부터 한국대사와 미 보훈처 장관 등이 참석하는 정부급 행사로 규모를 바꾸는데 동부지회가 일조했다. 김 전 회장은 “작년에는 딕 체니 부통령과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등 비중있는 인사들의 참여로 어느 때보다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매년 미 참전용사 350명을 한국으로 초청, 4박5일간 재방한 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도 동부지회의 역할이 컸다.
“74세라는 나이도 있고 해서 이젠 가족들과 신앙생활에 전념할 것”이라는 김 전회장. 25년째 출석하고 있는 워싱턴감리교회(이승우 목사) 역시 김 전 회장이 설립에 참여한 교회다.
현재 버지니아 옥튼에 부인 김경자씨와 거주하고 있는 그는 시애틀과 산호세에 각각 딸과 아들이 있다.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