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뜻에 따라 조촐히
시신 30일 워싱턴 운구
의사당서 조문객 받아
장지 미시간주 포드박물관
93세를 일기로 26일 타계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은 오는 30일 밤 국장으로 워싱턴 DC의 내셔널 캐시드럴에서 치러진다. 국장이지만 지난 2004년 6월 치러졌던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식보다는 조촐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포드의 장례는 그가 거주했던 캘리포니아주 팜데저트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29일 간소한 예식을 갖는 것부터 시작되며, 그후 시신을 워싱턴으로 운구, 의회 의사당에 안치해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은 후 30일 밤에 국장 절차가 진행된다.
포드의 유가족들은 소탈한 포드의 성격등으로 봐서 장황한 장례식보다는 조촐한 장례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례상 현직은 물론 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자는 국장(state funeral)을 치를 자격이 있으나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떤 세부 절차를 거칠 지는 전적으로 유족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관식은 3일 그의 고향인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의 포드 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8년간 두 번의 임기를 채웠던 레이건과는 달리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3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미 역사상 최초의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었고 재임 기간도 895일 밖에 되지 않는다.
레이건 때와 같은 화려한 국장은 지난 1973년 린든 B 존슨 대통령 때 이후 30여년만으로, 지난 1994년 타계한 닉슨의 경우 본인의 희망에 따라 유족들이 국장으로 치르지 않았었다.
한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7일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신사”라며 조의를 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말휴가를 보내고 있는 텍사스주의 크로포드 목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포드 전 대통령이 드러나지 않는 정직성과 상식을 토대로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신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치유하는 것을 도왔다”고 말했다.
“워터게이트 혼란 의연하게 극복”
닉슨 지명으로 895일 재임
개방적이고 직설적인 성격
선거없이 부통령·대통령에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제럴드 포드 전 미 대통령은 CNN이 ‘가장 대통령답지 않다’고 표현했듯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뒤를 이어 1974년 38대 대통령직을 떠맡음으로써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다.
개방적이고 직설적인 그의 이미지는 은폐적이고 음모적인 닉슨과 극명하게 대비됐는데, 이런 그의 성향은 25년간의 의정생활에서 몸에 익었다는 평가다.
1913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2주만에 생부와 결별한 어머니를 따라 제2의 고향인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성장하며 공부와 스포츠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경제와 정치를 전공한 미시간대에서 풋볼팀 선수로 맹활약 했다.
예일대서 법학을 전공한 후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에서 활약했고 소령 예편 후 고향인 그랜드래피즈로 돌아와 변호사 실무를 익히며 공화당원이 됐다. 처음 정계에 발을 디딘 1948년 미시간주 제5구역 연방 하원의원 선거를 불과 수개월 앞두고 엘리자베스 블루머와 결혼해 자녀 넷을 뒀다.
상원 및 주지사에 도전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1973년까지 늘 6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12차례 연속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하원 공화당협의회 의장 등 여러 직책을 무난하게 소화했으며 마침내 1973년 10월 세금문제로 사임한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뒤를 이어 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후 특히 중동의 새로운 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동시에 지원하며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했으며 새로운 미·소 핵무기 감축에 합의하기도 했다. 2차례 암살기도서 벗어나기도 했던 그는 1976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 후보에 도전했지만 조지아주 주지사였던 지미 카터에 패했고 1977년 1월20일 짧은 대통령직 임기를 마감했다.
<이정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