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탄주의 모든 것

2006-1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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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딸랑딸랑”좋아하면 간은 간다

맥주·양주 섞은 혼합주
쓴 맛 없고 순해서‘술술’
식도·위·장 등에 치명적
‘한 시간에 한 잔’이 적당

잘마시면 화합주, 과음 하면 독주. 주당들이 즐기는 폭탄주 이야기다. 언제부터인지 폭탄주는 술좌석을 지배하는‘주군’이 돼버렸다. 전통 음주 방식을 뛰어넘은‘변태주’로 치부돼 술좌석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애주가들이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다가도 누군가가“폭탄주 한잔 어때”를 외쳐대면 순식간에 장내 분위기는 엄숙하다 못해 장엄해 진다. 연말연시 주당들의 건강을 앗아가는 폭탄주를 해부 해보자.
맥주와 양주를 섞어 먹는 통칭‘폭탄주’(맥주와 소주는 소폭주)는 혼합주이다. 술은 출시품을 그대로 마시는 스트레이트 드링크(straight drink)와 주스 또는 청량음료와 섞어 마시는 믹스드 드링크(mixed drink) 즉 혼합주로 나뉘는데 폭탄주는 바로 두종류를 섞어 만든 혼합주, 다시 말해 칵테일이다.
폭탄주는 소주나 양주의 쓴맛을 없애주고 알콜 도수를 순화시켜 목 넘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순한 맛만큼이나 폭음을 유도해 인체에 상당한 부담을 가져다준다.

<연말 회식자리에 모인 직장인들이 폭탄주로 한 해를 정리하고 있다. 폭탄주를 마시려면 천천히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



▲알콜 농도
폭탄주의 알콜 함량은 대략 10% 내외로 본다. 소주와 섞는다면 9% 정도로 추정된다.
양주의 알콜 함량이 40~43%, 맥주는 4~5%이다. 230ml 맥주잔에 맥주를 3분의2(150ml) 따라 붓고 양주잔에 양주를 가득(35ml) 채워 잔에 퐁당 넣어 보자. 맥주와 양주가 어우러져 황금빛 폭탄주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재면 10% 정도 된다. 물론 맥주와 양주의 양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 와인보다도 순해진다. 폭탄주를 한잔 마셨다면 와인을 맥주컵에 따라 벌컥대며 마신 것과 같다. 세잔을 연거푸 마시면 거의 와인 한 병을‘쓱싹’ 해치운 거나 다름없다.

▲폭탄주와 건강
물론 건강에는 최악이다. 알콜 함량이 낮아져 마시기가 편해진다. 편한 만큼‘원샷’도 즐긴다. 이는 폭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폭탄주 한잔에는 소주 2잔 분량의 알콜이 들어있다.‘원샷’으로 마셨다면 소주 2잔(양주는 1잔 반)을 순식간에 들이킨 셈이다.
의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알콜 농도 14%가 인체 흡수력을 최대로 높인다. 따라서 소주 2잔을 인체 흡수력이 가장 높은 상태의 술로 바꾸어 들이키는 것이 되므로 그 결과는 뻔하다. 금방 취하는 것.
또 하나 있다. 탄산은 알콜 흡수력을 높여준다. 맥주의 탄산이 인체 내 알콜 침투를 극대화 시킨다. 이에따라 몸은 순식간에 술기운으로 휩싸이게 되고 대뇌활동을 둔화시켜 인사불성, 실수를 연발케 한다. 특히 체내 독성이 급증하고 이를 분해하는 간 기능이 약화돼 각종 간질환의 원인이 된다. 물론 식도, 위, 장에도 문제가 생긴다.
폭탄주 한잔을 한시간에 한잔씩 서서히 마신다면 건강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한시간 동안 간에서 체내 알콜을 분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폭탄주의 유래
우리 조상이나 유럽에서 주정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술을 섞어 마신 기록들이 많다.
나폴레옹 3세가 전쟁 중 장병들에게 와인 조달이 힘들어지자 와인과 독한 술을 섞어 마시게 했다는 설도 있다.
1920~30년대 몬태나주의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1992년작)에서 주인공 형제가 마을의 선술집에서 폭탄주를 마신다. 애인에 버림받은 형이‘위스키 믹스’를 주문하자 바텐더가 맥주가 가득 채워진 잔에 위스키 잔을 넣어 건네준다.
또 대공항 시절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강철의 심장’(Heart of the steel)에서도 철강 노동자들이 실직과 파업 등의 시름을 폭탄주로 달랜다.
폭탄주는 20세기 초 미국의 가난한 부두, 벌목, 철강 노동자들이 즐겨 마신 술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도 맥주 500cc에 독일 술‘슈납스’를 잔에 넣어 마시는 서브마린주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들도 주종을 섞어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1세기 전 막걸리 사발에 소주 한 잔을 섞어 마시는‘혼돈주’ 또는‘자중홍’으로 불리는 술이 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 60년대에는 소주와 맥주 또는 막걸리를 섞어 먹기도 했다.

▲폭탄주의 종류

<전통 폭탄주 제조법>


<양주잔을 젓가락위에 올려 놓고 만드는 변형 폭탄주 제조법>

한국에서 유행하는 폭탄주는 약 30종류쯤 된다. 맥주잔에 양주잔을 넣고 휴지로 컵을 막고 흔들어 마시는 회오리주에서부터 맥주잔에 젓가락 두 개를 걸치고 그 위에 양주잔을 놓은 다음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충성”을 외치면 양주 잔이 맥주잔위에 떨어지게 되는‘충성주’등등.
골프주, 사정주, 쌍끌이주, 황제주, 금테주, 태권도주, 타이타닉주 등 별의별 아이디어를 동원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각종 폭탄주가 줄줄이 이어진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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