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받을때 잔 든다? “삐~, 초보시군요”

2006-12-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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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와인 매너
“내잔 한잔 받게나” “아! 예~ 선배님. 감사합니다”
나이 많은 선배의 술을 받는 후배가 엉거주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술잔을 들고 고개를 숙인다.
연말 동창회에서 흔히들 볼 수 있는 우리식 권주 문화다. 동창회, 직장 회식등 각종 파티가 줄을 잇는 연말 송년모임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서먹한 분위기를 돋아주는 알콜 음료, 즉 술이다.
수년전 만해도 송념모임 테이블에는 늘상 맥주와 양주, 또는 소주가 당연하게 분위기 메이커로 오르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추세가 바뀌고 있다. 음주 운전의 부담도 덜하고 모임의 격조도 높여주는 와인이 젊잖게 테이블에 앉아 분위기를 리드해 간다. 추이가 이렇다보니 당연히 술 권하는 문화도 달라져야 하는 법. 와인 매너를 익히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와인만이 고집하는 복잡한 매너에 눈총을 보내기도 한다. 술을 따를 때 잔을 들면 안 된다거나 술잔은 다리를 잡고 마신다는 등등. 술맛을 기대하는 주당들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와인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 ‘원샷’이 통용되는 한국인들의 ‘주류 사회’ 매너로는 와인의 진정한 맛과 분위기를 음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잔을 기울여 입속으로 떨어지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키스하듯 혀를 살짝 굴려보라.
속살을 감아 도는 와인의 진액이 온갖 맛 세포를 자극한 뒤 목젖을 울려주며 형형색색 환상의 세계로 안내해준다. 우리식 ‘원샷’이나 막걸리 또는 폭탄주 넘기듯 벌컥댄다면 차라리 술자리에 불러주지나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격식에 얽매여 모임의 분위기를 망칠 수야 없지 않는가. 와인과 더불어 즐거운 모임을 보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격식은 버려도 되는 일. 이론은 알아 두되 노예는 되지 말자.
지난 6월인가 프랑스를 방문한 한국의 한명숙 국무총리가 프랑스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오찬을 하며 건배를 하는 사진이 외신을 통해 보도됐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 보면 한 총리는 와인 잔의 다리를 잡고 있고 프랑스 대통령은 와인 잔의 몸통을 잡고 축배를 하고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의 대통령이 와인 매너를 몰라서 그랬을까?
와인을 아끼고 사랑하며 정성스레 마시는 것도 좋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 지인들을 무안하게 만들면서까지 매너를 따질 필요는 없다.
지나치게 와인 잔을 흔들어가며 냄새를 맡는다든지, 옆 사람들에게 “와인 잔을 받쳐 들면 어떻해?”라며 훈시성 코멘트를 날린다면 오히려 분위기를 깨는 매너 ‘0’점이 될 수 있다.
와인 잔의 다리를 잡는 이유는 사람의 체온이 잔속의 와인에 전달되는 것을 차단해 본연의 맛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인의 온도 변화가 짧은 시간에 얼마나 높을 것이며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전문가라면 모를까.
제일 편한 자세와 방법으로 ‘원샷’은 피하고 천천히 음미해가며 분위기 돋우고 음식 소화제로 마신다면 그것이 와인을 마시는 가장 좋은 매너일 것이다.

여자부터 따르고 ‘화이트’는 절반 ‘레드’는 ⅓이 정량
양식 테이블에선 오른쪽 잔이 자기 것… 첨잔도 가능

잊지 마세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와인 매너를 정리했다.
▲ 어떤 것이 내 와인 잔인가- 양식 테이블 세팅이라면 오른쪽 물잔과 와인 잔이 내 것이다. 왼쪽은 빵을 담는 접시가 있게 마련. 가까이 있다고 왼쪽 잔을 덥석 잡으면 옆 좌석 줄줄이 왼쪽을 잡아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 와인을 따를 때- 시계 방향으로 여자들부터 따르고 남자들은 그 다음이다. 식당에서 먹는다면 와인 고른 사람 잔을 가장 늦게 따른다. 적포도주는 와인 잔의 3분의1, 백포도주는 절반쯤이 정량.
▲ 와인을 받을 때 - 테이블에 와인 잔을 놓아두는 것이 원칙. 윗사람이 따를 때는 공손히 잔 받침이나 다리를 잡는 정도가 좋다.
▲ 첨잔이 가능하다- 우리 문화는 첨잔이 금물이지만 와인은 첨잔이 가능하다. 보통 한두 모금 남았을 때가 적기다. 물론 “한잔 더하겠냐?” 고 묻는 것이 좋으며 자리를 잠시 비운 사람의 잔에는 돌아올 때까지 첨잔을 하지 않는다. 내잔에 직접 첨잔을 하려면 남의 잔을 먼저 채워주고 내 잔에 따른다.
▲ 건배는 몸통으로- 건배를 할 때는 튤립형 와인 잔의 몸통을 살짝 부딪친다. 윗부분은 아주 약하므로 자칫 깨질 수 있다.
▲ 와인 잔을 돌릴 때는- 잔을 돌리는 이유는 와인이 글라스 벽면에 가득 묻어 풍부한 향기를 뿜어내게 하기 위한 것. 오른손잡이라면 시계 반대방향, 즉 자신의 몸 쪽으로 잔을 가볍게 돌린다. 이유는 와인이 타인에게 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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