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휴가를 이용해 친구와 친척집을 방문하고, 평소 무척 좋아하던 산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가지려던 30대 한국인 아버지 제임스 김씨가 오리건주에서 길을 잃고 폭설에 갇히어 헤매다 끝내 사망했다. 11월 17일 샌프란시스코 집을 떠나, 시애틀의 친척집을 들른 후, 24일 시애틀에서 오리건의 포틀랜드 친구 집을 방문했다. 집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미국 부인 캐티와 4살 그리고 7개월이 된 두 딸은 먼길 여행에도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했다.
김씨 집안의 비극적 운명은 25일 시작되었다. 친구 집을 떠나 25일 9시쯤 로즈버그 대니스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99번 하이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목표지점은 골드비치라는 곳이었는데, 42번 진입로를 놓치는 바람에 그랜츠패스 산 속으로 접어들었다. 비가 눈으로 변하는 통에 26일부터 차는 완전히 눈에 갇혀 조난을 당했다. 그 날로부터 12월 2일 김씨가 구조를 받기 위해 떠날 때까지, 나무 열매와 눈을 먹으면서 연명했고, 아이들에게는 어머니의 젖을 먹였다. 세상에서 고립된 가장(家長) 김씨와 3여자의 운명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눈물겹고 애절했다.
조난 1주일 째, 초조와 절망감으로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구호의 손길을 찾기 위해 김씨는 옷을 껴입고 지도와 라이터 2개만을 지니고 가족을 남겨둔 채 구조 요청을 떠났다. 여기서도 운명의 신은 야속했다. 서쪽으로 떠났어야 도로가 나왔을 터인데, 동쪽 방향으로 잘못 떠나, 눈 속에서 10마일을 헤매다 체온 저하로 동사했으며. 그의 사체는 6일 발견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김씨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떠난 지 이틀만에 구조되었으니, 김씨가 이틀만 함께 더 가족과 견디었다면 불행을 피하고 모두가 살았을 터인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CNN, ABC, FOX 등 미국 주요 매스 미디어의 집중적인 취재에 의해 동포사회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이 사건은, 가족을 살리기 위한 김씨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인해 아름다운 휴먼스토리로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는 가족사랑 일념으로 폭설과 협곡을 헤치고 살신성인의 길을 택했다. 구호 활동을 지휘한 경찰국장 대리는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렸고, 집(가게)으로는 그를 애도하는 엽서, 촛불, 꽃들이 밀려들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추모의 글과 이메일이 폭주했다. 직장 동료들은 김씨 가족을 위한 모금운동에 돌입했다.
조난지인 깊은 산악 고지대에서 탈진한 채 포기하지 않고, 위험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의 영웅적 행동에 대해, “타이타닉 영웅보다도 더 영웅”이라는 찬사도 들린다.
위기에 직면해, 약한 사람과 여자들을 먼저 돕는 사랑과 용기가 바로 타이타닉 정신이라면, 제임스 김은 바로 이 시대의 영웅이다. 타이타닉호가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는 순간, 남자들은 밤새도록 어린이와 여자들을 먼저 구명정에 태워 보냈다. 자신들은 마지막 구명정이 배를 떠날 때까지 사투(死鬪)를 했다. 그 후 선장은 37명의 기관사들을 갑판 위에 집합시켜 놓고 7명의 악사들이 찬송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끝까지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타이타닉호의 승무원들의 장엄한 죽음은 위기가 닥칠 때 나타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승리였다. 제임스 김이 보여준 가족사랑은 타이타닉호의 영웅처럼 우리 뇌리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제임스 김의 아버지 스펜서 김씨도 멋진 분이다, 유족을 대표해서 발표한 성명은 이 또한 그 아들에 그 아버지임을 보여 주었다. “제임스가 사망해 너무 슬프지만, 그의 생환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생면부지의 이방인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여러분이 진정 영웅이다.” 나는 이 발표를 듣는 순간, 1999년 광신적 백인 우월주의자인 ‘벤자민 스미스’에 의해 피살된 유학생 윤원준군과 그의 아버지 윤시호씨가 떠올랐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픔을 극복하고, 4대독자의 죽음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드리고, 그 희생을 마지막으로 이 세기말의 혼돈을 벗어나, 다시는 이 땅에 폭력과 증오가 재발하지 않도록 평화와 정의가 바로 서기를 바란다던 윤씨의 의연한 태도가 생각났다.
첩첩산중에 가족을 남겨두고 구조의 손길을 찾아 헤매던 김씨의 마음은 얼마나 초조하고 절망에 빠졌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불상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여기서 값진 교훈을 얻어야 될 것이다. 생후 7개월밖에 안된 어린아이를 데리고 겨울 여행, 그것도 산행(山行)은 무리한 일이다. 위험한 지역에 홀로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비상용품이나 식량의 준비도 허술했던 것 같다. 인터넷 지도에 허점이 많고 셀폰도 너무 믿을 것이 못된다, 사고는 늘 방심할 때 일어난다. 성탄의 기쁜 계절, 사랑하는 부인과 아이들의 안부도 모르는 채 언 땅에서 눈을 감은 젊은 고인의 주검에 삼가 명복을 빈다.
<육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