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르고뉴 와인

2006-10-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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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재배 지역 110곳으로 세분화
생산자 이름만 1,000개 넘어
와이너리 이름으로 맛·질 평가 못해

부르고뉴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와인이다. 물론 그냥 한잔 마시고 만다면 어렵고 쉽고가 없겠지만, 와인 한잔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갖고 마시기 원한다면 부르고뉴 와인처럼 복잡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의 역사에 담겨있다. 시작이 기원전 5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부르고뉴(Bourgogne, Burgundy라고도 함) 와인은 6세기경 훌륭한 포도 재배기술을 가진 많은 수도원들이 들어서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12세기부터 그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이나 교회 소유의 포도원을 정부가 모두 몰수, 경작지를 작게 나누어 개인들에게 분할해주면서 수많은 포도원이 생겨났고, 나폴레옹은 경작지를 자녀수대로 나누어 상속하게 하는 새로운 상속제도를 만듦으로써 부르고뉴의 와인 산지는 더더욱 작게 세분화 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수많은 생산자별 라벨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포도재배 면적이 보르도의 3분의 1에 불과한 부르고뉴는 110개의 지역(appellation)으로 나뉘어 있으며, 생산자 이름이 1,000개가 넘는다.
이처럼 부르고뉴의 포도원들은 각각 경작지가 작고 수확량이 적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네고시앙’(Negociant)이라는 와인중개상이 18세기 초부터 생겨나 영세 재배자들로부터 포도를 사들여 양조, 병입, 유통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마을 이름보다는 이들 네고시앙의 명성에 따라 와인의 수준이 평가된다. 이런 이유로 부르고뉴 와인은 단순히 와이너리나 지역이름으로 맛과 질을 평가할 수도 없고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생산자 이름만도 수백개가 넘는 것이다.
부르고뉴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단일 포도품종의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부르고뉴 가장 북쪽의 샤블리에서는 100% 샤도네로 빚은 화이트 와인을, 부르고뉴 중심부의 꼬뜨 도르에서는 100% 피노 누아를, 가장 남부의 보졸레에서는 가메이(Gamay)만으로 레드 와인을 만든다.
흔히 여러 품종을 섞고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우아한 보르도 와인을 ‘여성적’이라고 하는데 반해, 단순하고 힘있는 부르고뉴 와인을 ‘남성적’이라고 하는 이유도 아마 한가지 품종만으로 풍요하고 강건한 맛을 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부르고뉴 지방은 크게 샤블리(Chablis), 꼬뜨 도르(Cotes d’Or), 마꼬네(Maconnais), 꼬뜨 샬로네즈(Cote Chalonnaise), 보졸레 (Beaujolais) 등의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아무래도 부르고뉴 와인 하면 적포도주 피노 누아가 대표적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꼬뜨 도르는 최고급 피노 누아의 산지이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급 포도주는 병당 수백달러를 호가한다.
꼬뜨 도르는 북쪽의 꼬뜨 드 뉘(Cote de Nuit)와 바로 아래 붙은 꼬뜨 드 본(Cote de Beaun)을 합친 지역으로 꼬뜨 드 뉘야말로 보르도와 쌍벽을 이루는 고급 와인생산지로 주브레 샹베르뗑(Gevrey-Chambertin), 부조(Vougeot), 본 로마네(Vosne-Romanee), 모레이 생 드니(Morey-St-Denis), 샹볼 무시니(Chambolle Musigny), 뉘 생 조르주(Nuits-St-Georges) 등이 유명하다. 나폴레옹 1세가 즐겨 마셨던 샹베르뗑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중 하나인 로마네 꽁띠, 클로드 부조 등이 모두 여기서 나온다.
꼬뜨 드 본에서는 레드와 화이트 와인 둘 다 생산한다. 최고급 화이트 와인인 꼬르똥(Corton), 꼬르똥 샤를만뉴(Corton Charlemagne), 바따르 몽라셰(Batard-Montrachet), 몽라셰(Montrachet), 슈발리에 몽라셰(Chevalier-Montrachet), 뫼르소(Meursault) 등이 생산된다.
부르고뉴 와인을 공부할 때 또 하나 알아두어야할 것은 4가지 등급이다.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Grand Cru), 두 번째의 프르미에 크뤼(Primiere Cru), 그 다음은 마을이름(Village), 그리고 일반적인 지역 명(Generic, 혹은 Regional)이 그것이다. 그랑 크뤼 등급에는 32개(레드 24개, 화이트 8개)가 올라있고 프르미에 크뤼는 400개가 있으며 빌라주 등급의 와인과 제너릭 와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와인들은 병 레이블에 ‘Cote de Beaunne Villages’ 혹은 단순히 ‘Bourgogne’라고 쓰여있다.

시음해 봤더니

최근 부르고뉴 최고급 그랑 크뤼 와인과 빌라주 와인을 함께 시음했다. 글렌데일의 Topline Wine & Liquor에서 구입.
▲2003 Domaine du Clos des Lambrays, Clos de Lambrays (79.99달러)
꼬뜨 드 뉘의 모레 생드니 산 그랑 크뤼 와인으로 대단히 풍요로운 과일향이 압도적이다. 잘 익은 피노 누아 특유의 베리와 자두 향에 달콤한 카라멜과 모카의 맛도 느껴지며 거의 풀바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겁고 태닌도 많아서 10년이상 숙성 가능하다. 부르고뉴 치고는 오크향이 조금 강한 것이 흠.
▲2003 Bourgogne Cote Chalonnaise (14.99달러)
꼬뜨 샬로네스 지역의 빌라주 등급 와인으로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전형적인 맛이다. 깨끗하고 투명하며 우아한 맛. 가격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은 와인이다. 아름다운 루비색에 안정된 과일 맛, 살짝 느껴지는 미네랄 향이 산뜻하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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