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지현의 와인 이야기 슬픈 날엔 샴페인을

2006-10-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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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 축제, 결혼 피로연, 승리. 샴페인을 이야기 할 때면 언제나 먼저 떠올려지는 모습들입니다. 샴페인은 늘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등장합니다. 빛나는 황금색과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작은 방울거품은 입에서 그리고 뱃속에 들어가서까지도 황홀한 느낌을 주는 발포성 와인입니다.
샴페인(Champagne)이라는 말은 프랑스 북부에 있는 지역을 뜻하는 지명입니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지 않으며 다만 따뜻한 편입니다. 따라서 포도는 당분이 낮아 알코올 함유량이 낮고, 대신 높은 산도를 띄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발포성 와인을 만드는데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역의 흙은 백묵 같은 토질로 되어 있어 포도송이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샴페인을 만들 때는 보통 세 가지의 포도가 사용됩니다. 붉은 품종인 피노 누와와 피노 뫼니에, 그리고 흰 품종인 샤도네입니다. 흰 품종을 이용하여 만든 것을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이라고 부르고 붉은 품종으로 만들어진 것을 블랑 드 누와(Blanc de Noirs)라고 부릅니다.
샴페인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인물은 베네딕틴 수도원의 동 뻬리뇽 수도사일 것입니다. 그는 거의 장님이었으며 술을 마시지도 못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후각과 미각은 최초의 전문 블렌더로서 와인의 맛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처음 탄산가스를 병 안에 잡아넣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동 뻬리뇽’은 세계 최고의 샴페인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샴페인은 보통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며 디저트 코스에도 잘 어울립니다. 샴페인 잔은 얇고 투명하며 가늘고 긴 튤립 모양으로 되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거품을 오래 머물게 하고 향을 한 곳에 잡아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은 보통 화이트 와인보다도 약간 더 차게 마실 때 더욱 맛이 우러납니다.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샴페인을, 때론 슬픈 날에도 마셔봅니다. 인생은 기쁘거나 즐거운 날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샴페인이 슬픔을 가져가 주지는 않겠지만,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거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던 것으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낙옆이 구르는 거리, 창 밖의 가을나무 숲, 길가의 들꽃… 슬픔과 기쁨은 늘 함께 있으며, 그 본질도 하나인 것을 알게 됩니다.
훌륭한 샴페인은 꿀이나 이스트, 초콜릿과 버섯 같은 것들의 향과, 사과와 레몬, 딸기와 멜론과 체리와 자두 같은 것들의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훌륭한 샴페인은 슬픔처럼 피어오르는 거품을 안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듯이, 거품과 맛이 따로 가지 않으며 거품 속에 샴페인이, 샴페인 속에 거품이 함께 녹아 존재하는 것입니다. Gentlewind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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