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공주가 입양아로
2006-09-16 (토)
28년만에 신분 되찾은 여배우 새라 컬버슨
친아버지 교환학생으로 미국와 생모 만나
가난때문에 아기 못 키우고 입양기관에
2년전 사설탐정 고용 왕족인 부친 찾아
내전으로 피폐해진 생부 나라 돕기 앞장
입양아로 자란 여배우 새라 컬버슨(LA 거주)은 28세가 되던 지난 2004년 12월 생전 처음 생부를 만났다. 꿈에도 그리던 친아버지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왕족이었다. 그녀는 한 나라의 공주라는 명예로운 신분을 되찾았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현재 그녀에게는 화려한 궁궐 대신 오랜 내전으로 피폐된 아버지 나라 사람들을 돌봐줘야 할 책임감만 남았다. 영화나 TV물 연기자, 또 광고에 출연하는 외에 과외로 브랜드우드 초등학교에서 댄스를 가르치면서 그녀는 생부의 나라 초등학교 재건에 ‘올인’하고 있다.
LA타임스는 15일 칼럼 원 기사로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2001년부터 할리웃에서 연기를 해온 순전한 미국인(?) 컬버슨이 아프리카 공주 신분과 핏줄 찾기 여정을 소개했다.
흑인과 백인 혼혈인 컬버슨은 1세 때 웨스트버지니아 입양기관을 통해 짐 컬버슨(웨스트버지니아대 교수), 주디(초등학교 특수교육 교사) 가정에 입양됐다. 그들의 친딸 2명은 백인이었기 때문에 컬버슨은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았고 ‘또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의 아메리칸 연기대학원을 졸업한 후 비로소 그녀는 생모가 웨스트버지니아 대학 교직원으로 있다 수년 전 암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았다. 그 때 생부를 찾을 수 있었지만 버림받았다는 자격지심으로 그를 포기했다.
2004년에야 그녀는 뿌리 찾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각오로 사설탐정을 의뢰했고 3시간만에 메릴랜드의 주소를 받았다. 메릴랜드에는 생부의 동생이 살고 있었고 그는 컬버슨의 모든 정보를 즉각 시에라리온의 범피를 통치하고 있는 형 조셉 코니아 크포소아에게 전달했다.
생부와 딸은 셀폰을 통해 처음 서로의 음성을 들었다. “딸아 미안하다. 입양된 후 이름이 바뀌어 되찾을 수가 없었다”라며 아버지는 딸에게 사과하며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놨다. 시에라리온 왕자로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그녀의 생모를 만났고 컬버슨이 태어난 후 둘은 너무 어리고 가난하여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데 합의하고 입양을 시켰다는 것.
그해 12월 컬버슨은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와 가족, 또 그녀를 공주로 받아들인 주민들의 환영은 극진했지만 11년간 내전으로 6만명 주민이 사망한 아버지의 나라는 너무 가난했다. 특히 아버지 통치구역인 범피는 제대로 된 집이나 건물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폐허였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운영했던 시에라리온의 명문 범피 고교는 지붕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매달 수입은 50달러 정도에 평균수명은 40세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컬버슨은 심한 혼란으로 시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 나라의 어린이들이 떠올라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범피의 주민들 중에서는 통치자의 미국인 딸을 ‘구원자’로 여기며 시도 때도 없이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녀의 사정을 돕기 위해 주변에서 먼저 비영리재단 ‘크포소아 파운데이션’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애써 외면하던 그녀도 이제는 범피 고교를 재건하자는 재단의 목적에 올인했다. 그녀를 양부모도 이에 적극 가세중이다.
<이정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