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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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은 비극 딛고 유방암 아픔도 넘고

2006-08-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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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되찾은 윤연순씨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


199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윤연순(사진)씨는 지금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나일까,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원망하는 보통 암환자들과는 달리.
1992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큰 사고로 죽어야 할 사람이 지금껏 생명을 부지했다는 것도 감사했고 아이들이 이제는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암 선고받기 몇 달 전 재혼한 남편이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 바람에 살아야 할 이유를 또 찾았다. 결국 남편의 끈질긴 설득에 굴복해 수술을 받았다.
그 뒤 6개월간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을 주사로 투여하는 키모 치료를 받았다. 자고 나면 한웅큼씩 머리카락이 손에 쥐어졌다. 제때 잠을 잘 수도 없었고 토하는 일은 예사였다.
이때 이웃들이 쾌유하라는 의미로 선물한 난이 큰 위안이 됐다. “이 난들을 보며 내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구나”하는 느낌을 받고 다시 살아겠다는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온몸이 뒤틀리는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오히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욕심도 버려지고 내 자신을 넉넉하게 바라보고 큰 잘못을 해도 용서하게 된다.”
요즘 그는 신앙생활에 빠져 있다. 우연한 기회에 말씀이 그의 마음밭에 떨어져 씨앗을 틔웠다. 30여년간 교회 문턱과 담을 쌓고 지내다가 지금은 예배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윤씨가 사고로 남편을 잃고 자신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말도 못할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간호사에게 쓸 것을 가져달라고 하는 부탁이었다. “그때 나는 보험도 없고 돈도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간호사는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다음달 렌트비가 더 걱정됐다.” 그후 그는 라피엣에 있는 마케팅회사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웠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숨을 돌릴 무렵 병이 발견되었다. 처음엔 체념했지만 남편과 자녀들의 설득으로 삶의 의지를 추스려 이제는 이웃들의 아픔을 보듬는 일에 열심이다.
“의외로 암환자들은 많아요. 침울해 하는 고객들, 직원들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내 수술자국을 보여주며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면 그들의 얼굴이 환해져요. 이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을 오픈시킬 줄 몰랐어요.”
그는 이제 자신이 겪는 것과 유사한 일을 겪을 사람들에게 도움주기를 원하고 있다. ‘형제끼리는 그 아픔이 내 아픔이 되는 것’이라며 부끄럼없이 속내를 나누려 한다.
그는 지난 7월 EB 암환우 및 가족후원회 창립총회서 ‘살아있는 것이 큰 축복’이라며 완쾌간증을 했고 지난 19일 2차 모임에 나가 암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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