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너럭/입추(立秋) 단상
2006-08-23 (수) 12:00:00
이현호 목사(향기로운교회)
입추,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 “바람이 분다. 살 것만 같다”던 한 시인(詩人)의 깊은 안도감이 내 마음자리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아, 정말, 살 것만 같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여름내 지쳤던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밤하늘의 달빛도 한층 더 정겨워 보인다. 아하, 내 마음이 시원하니 모든 것이 정겹다.
달을 바라보는 것이 참 좋다. 차오르면 차오른 대로 왠지 흐뭇하고, 비워지면 비워진 대로 왠지 숙연해진다. 서러울 때 바라보면 더 서럽고, 편안할 때 바라보면 더 편안해진다. 달이 바라보는 자의 마음을 공감(共感)하는 것일까? “그렇구나.” “그랬구나.” 달은 늘 그렇게 속삭여주는 것 같다.
무척이나 더웠던 지난여름. 하지만 벌써 기억이 희미하 다. 갈바람은 속삭여준다. “아무리 더워도 한때.” 그래, 인생이 그렇지. 아무리 힘겨워도, 아무리 어두워도, 아무리 지겨워도, 모두 한때다. 걷히지 않는 어둠이 없고 그치지 않는 비가 없듯이, 그저 한때일 뿐이다. 길게 보면 보인다, 한때라는 것을. 무더위에 헐떡거리면서 넋놓고 살던 때는 잠시. 지금은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달빛을 벗 삼아 유유자적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
힘겨워도 한때지만, 좋아도 한때다. 그치지 않는 노래가 없듯이, 깨지 않는 단꿈이 없듯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도 한때다. 그러니 인생들이여, 힘겹다고 주저앉지 말고, 잘 나간다고 거들먹거리지 말자! 인생이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낮과 밤이, 화창한 날과 흐리고 우중충한 날이 날줄과 씨줄로 교차되어 만들어내는 한장의 모눈종이 같은 것. 칸칸이 자기의 이야기를 새겨넣으면서 당신과 나는 살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색채를 발하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훗날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될 것이다.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는 변화무쌍한 인생길에서 , 우리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어떨까? 내가 웃고 있을 때 당신이 울고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나의 탄성(Yes!)이 탄식(Oh, no!)하는 당신에게 사치가 될 때도 있다. 입장이 뒤바뀔 때도 있다. 네게 내가 필요한 때가 있고, 내게 네가 필요한 때가 있다. 그러니 나 좋다고 너무 깔깔대지 말고, 힘겹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지 말자. 내일이 오늘 같으란 법은 없다. 누구에게나, 무더위는 가고 신선한 가을은 온다.
올 가을에, 서로를 다시 바라보면 어떨까? 내가 네게 필 요한 때인지, 내게 네가 필요한 때인지 살펴보면 어떨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 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이 가을을 함께 축하하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에게 갈바람이 되어 “살 것만 같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