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권하는 성경? “Yes & No”

2006-07-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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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 필수품… “마셔라” “말라” 둘 다 기록

하나님의 귀한 선물… 남용·절제 우리의 선택

한국 개신교회는 금연과 금주를 철칙처럼 여기고 있지만 성경에는 포도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인류의 새로운 조상인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잠들었다는 것을 보면 포도나무는 인류역사의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것이 틀림없다.
신약시대에 와서도 예수님이 처음 보여준 기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를 만든 일이었고, 십자가에 달리기 전 베푼 최후의 만찬에서도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로 축복하며 최초의 성찬식을 실시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린도전서 11:23)
혹자는 예수의 활동이 포도주로 시작하여 포도주로 끝을 맺었다고 말할 정도로 신약에서 포도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때문에 교회는 성만찬 의식을 위하여 포도주를 담갔고 와인의 양조역사는 수도원과 수도사들에 의해 이어져왔다.
미국에서도 금주령 시대에 모든 와이너리가 문을 닫았을 때 나파 밸리에서 꼭 한 군데 ‘베린저’(Beringer) 와이너리가 합법적으로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가톨릭 교회의 성만찬에 쓸 포도주 때문이었다. 그만큼 구교에서 포도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매주 성찬식을 거행하지 않는 개신교에서는 성찬식에서도 포도주가 아닌 포도주스를 사용하는 등 술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와인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데다 건강에도 좋다고 하자 신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관대해진 느낌이지만 만일 목회자가 와인을 마셨다 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아직도 술은 금기의 대상이다.
그러면 성경은 포도주를 권하고 있을까, 금하고 있을까? 그 답은 ‘둘 다’이다. 권하기도 하고 금하기도 하는 견해가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솔로몬이 쓴 전도서의 한 구절을 보면 “너는 가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9장7절)라며 즐겁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유하지만 반면 잠언에서는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언 23:31)라고 절대 금하고 있다.
또 성경에서는 포도를 재배하는 것과 포도주를 오래 저장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잠언 마지막 장의 현숙한 여인에 관한 구절에서 “누가 현숙한 여인을 얻겠느냐… 밭을 간품하며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라고 한 것은 포도원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거나 수입원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이사야서 25장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라는 구절은 이 시대에도 잘 양조되어 찌꺼기 없이 맑게 걸러지고 오래 숙성한 와인을 상품으로 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최근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상식이었음을 성경이 말해주고 있다. 누구보다 경건하고 엄격했던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디모데전서 5:23)고 편지한 것을 보면 포도와 포도주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벌써 2,000년 전에도 알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금씩 쓰라’는 것일 것이다. 포도주든 다른 술이든 많이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건강을 해치게 되고, 또 잔뜩 취하여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신앙인으로서 덕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는 성경구절에도 거치는 것이 된다.
이처럼 기독교 신자라 해도 성경에 따라 포도주에 대한 견해를 정립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을 인용하여 포도주를 마셔도 좋다든가 마시면 안 된다든가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포도주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필요한 것은 절제와 중용으로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탕진하느냐, 멋지게 즐기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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