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재사고로 부인 먼저 보낸 이상표씨

2006-06-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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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 지씨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운 나날

▶ “믿어지지가 않아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지난 17일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하늘로 보낸 이상표(51) 씨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본보 17일자 1면 보도)
“잠결에 아내가 깨워 일어나 보니 방안 가득히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방문을 연 순간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들어 불이 난 것을 알고 정신이 번쩍 났죠. 소리를 지르며 옆방에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웠습니다.”이씨는 사고 당시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이씨는 부인 지선옥(사망.49) 씨가 911에 전화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창문을 열었으나 이미 연기가 실내를 가득 덮어 급한 김에 목욕탕으로 뛰어 들어갔고, 고인이 된 부인 지씨는 계단 쪽으로 달려가 아래층의 홈스테이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지르며 대피토록 했다. 이씨가 들은 부인의 마지막 생전의 목소리였다.
이씨는 목욕탕 창문 밖에서 모인 이웃들이 이씨를 향해 뛰어내리라고 해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야 딸과 아내를 밑에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뛰어내렸으나 잘 못 헛디뎌 발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쓰려졌다. 이후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집밖에는 피신한 아들 이충은(19)과 딸 이가영(14) 그리고 3명의 홈스테이 학생들 모습은 보였으나 부인 지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들어 괴롭습니다”
현재 이씨 가족은 말 그대로 빈털터리다. 황급히 불을 피해 집밖으로 나오는 통에 옷과 가재도구 등을 챙기지 못해 주변 이웃들이 보내 준 옷가지 몇 벌이 가진 것의 전부이다. 또 렌탈 이었던 집마저 들어가지 못해 남은 3가족은 지인 집에 머물고 있다.
2001년 4월 독립이민으로 밴쿠버 땅을 밟을 때만 해도 이씨 가족은 행복했고, 이민 생활이 잘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투자한 모 정보업체 회사가 어려워졌고, 지난해 1월에는 그나마 회사에서 해고되어 부인 지씨가 홈스테이를 하며 4식구의 생계를 꾸려왔지만 빚만 계속 늘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태에서 큰일을 당하게 됐다.
다행히도 그레이스 한인교회(담임목사: 박신일)와 성도들의 도움으로 지난 19일 부인의 장례를 치렀으나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한 상태다.
현재 이씨 가족을 돕고있는 손문익씨는 “노스밴쿠버 시장 및 관계자를 만나 이씨 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씨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직장을 구해주는 것이 급선무이고, 코압 아파트와 같은 저렴한 아파트를 들어 갈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보고 있다”며 한인사회에서 이들 가족에게 온정을 베풀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씨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번 주일인 25일 특별헌금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철모르는 딸아이를 보며 기운을 내려고 합니다.” 이씨는 발을 다쳐서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가장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결연한 재기의 의지를 보였다. ■후원모금처: 604-777-5230 (그레이스한인교회) /정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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