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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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1년 어떻게”

2006-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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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아들 살인자로 억울한 옥살이한 계부

소파위서 놀다 떨어져 아기 죽자
아동병원 의사 살해 주장 유죄 선고
동거아내, 대통령에 탄원서도 허사
아이 병력기록등 제공 결백입증

자신의 2세 아들을 폭행해서 숨지게 했다는 혐의로 동거애인이 수감된 뒤 무려 21년간 옥바라지는 물론 그의 무죄 입증 투쟁을 벌였던 브렌다 부엘(44)의 감동적 순애보를 16일 LA타임스가 1면 톱으로 그려냈다. 타임스는 지난 83년 샌디에고 지역은 물론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필립 아기(당시 2년9개월)의 사망 케이스와 그로 인해 살인자로 낙인 찍혀 수감됐다가 21년만인 2004년 무죄 석방된 켄 마시(51) 부부의 잃어버린 21년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 부부의 인생을 바꾼 사건은 1983년 4월27일 발생했다. 각각 이혼하고 6개월 전 재혼을 전제로 동거를 하던 이들의 아들 필립이 이들을 돌보던 마시가 베이큠을 하는 동안 딴 방 소파 위에서 놀다 떨어져 혼수상태에 이르렀다가 결국 숨진 것. 아기는 소파를 괴어놓은 벽돌에 부딪쳐 의식을 잃었고 911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마시는 당연히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 사건은 샌디에고 어린이 병원의 저명한 의사와 그의 견해를 따른 검찰에 의해 ‘의붓자식을 잔인하게 때려죽인 계부 스토리’로 만들어졌고 그는 결국 그해 말 배심원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마시는 ‘하지도 않은 것을 했다고 할 수 없다”며 검찰의 6년형 조건부 합의 회유에도 응하지 않았다.
정작 아들을 잃은 부엘은 처음 마시에게서 정황을 듣는 순간부터 단 1초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재판 때에도 그녀는 아기가 혈액성 질병을 앓아서 어디서든 넘어져도 쉽게 중상을 입으며 사건 전에도 병원 입퇴원을 계속했다며 마시의 결백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아동병원 어린이학대 유닛의 수석의자 데이빗 차드윅 박사(79)의 “소파 위에서 떨어진 상처가 아니라 아기의 두발을 거꾸로 잡고 벽에 내동댕이쳤을 때나 보이는 상처로 아기가 죽었다”는 논리적 설득을 이길 수 없었다. 검찰은 그녀가 그리도 주장하건만 필립의 메디칼 히스토리를 증거로 채택하지도 않았다.
부엘의 처절한 옥바라지와 항소, 주지사나 대통령에게 청원서 내기 등으로 그의 결백 입증 투쟁은 계속되었지만 희망은 퇴색되어 갔다.
그러나 1996년 트레이시 엠브렘 변호사를 만나면서 한 줄기 빛을 보게 됐다. 필립 아기의 병원 기록들과 그녀가 십수년간 모았던 자료를 본 변호사는 의료진과 법의학자를 동원, 필립 아기의 죽음이 사고일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그 노력에 당시 새로 선출된 샌디에고 카운티 여검사장이 합류, 재심을 결정함과 동시에 그의 석방 결정을 내렸다. 수감된지 꼭 21년이 된 2004년 8월이었다. 검찰은 재심을 하지 않기로 했고 그해 10월 둘은 결혼했다.
결혼 2년째인 부엘은 아직도 수감 후유증을 무섭게 앓고 있는 마시를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마시는 새파란 28세의 그가 아니었다. 갈색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공포증으로 부엘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마시는 현재 차드윅 박사와 당시 의료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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