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파 와인’세월의 시험도 거뜬히 통과

2006-06-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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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 미국 와인 대결②

30년전 그 때 그 와인들
미·영 두 곳서 재격돌
미, 숙성도 테스트도 석권

정확히 30년만인 지난 5월24일,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 리매치는 두 군데서 동시에 열렸다. 영국 런던의 유서 깊은 와인 샵인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Berry Brothers and Rudd wine shop)와 미국 나파밸리의 음식문화박물관인 ‘코피아’(Copia) 센터가 그 곳으로, 이번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의 심사위원들이 양쪽에 9명씩 포진했다.
30년 전 파리 대회를 처음 조직했던 스티븐 스퍼리어와 개스토 갤라거가 각각 런던과 미국의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위원들은 내노라하는 와인 전문가들(나파-스티븐 브룩, 안드리아 이머 로빈슨, 폴 로버츠, 크리스티앙 바네케, 장 미셸 발레트 등/ 런던-잰시스 로빈슨, 재스퍼 모리스, 휴 존슨, 마이클 브로드벤트 등)이었다.
이곳 시간 아침 9시30분에 시작된 시음회는 비장하리 만치 진지했고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모두들 하나 하나의 평가에 최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76년의 시음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에는 아무도 미국이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은 데다가 지금처럼 와인이 유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시음대회가 열렸는데 이번에는 마치 무슨 전쟁이라도 치르듯 심각하게 전세계가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이다. 시음은 점심식사 무렵 끝났으며 양측의 점수는 통계 전문가들에게 넘겨져 오후에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1위 리지, 2위 스택스 립 와인 셀라즈, 공동 3위 하이츠와 마야카마스, 5위 클로 뒤발…” 1위부터 5위까지를 미국 나파밸리 산이 휩쓸었다. 나파 와인이 세월의 시험도 이겨내고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보르도의 샤토 레오빌 라카스, 오브리옹, 몽트로즈, 무통 로실드를 눌러버린 것이다.
이 시음은 사실상 숙성의 결과를 알아보는 대회였다. 그동안 와인업계에서는 캘리포니아의 레드 와인은 오래 숙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죽 있어 왔다. 프랑스 보르도의 레드 와인들은 수십년, 길게는 100년 이상 숙성해도 그 맛을 유지할 수 있음이 몇 백년의 포도주 역사에 의해 증명됐지만 미국은 양조가 시작된 것이 불과 100여년이고, 그나마 20세기 초 금주령 시대에 와이너리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가 1970년대 이후가 돼서야 본격적인 양조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와인 숙성을 지켜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바른 해석이다. 항간에는 나파 레드 와인은 20년 이상 된 것을 사지 말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데 이것 역시 그 이상 숙성한 와인을 맛볼 기회가 아주 드물어서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을 처음 내세우고 주장한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이었다. 지난 주 언급했듯이 프랑스인들은 76년 대회의 결과에 쉽사리 승복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와인을 너무 얕본 탓에 무방비 상태에서 패배했기는 하지만 “빨리 익는 캘리포니아 와인은 처음에는 맛있지만 결코 오래 숙성하지 못할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그들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미국 와인을 무시했던지, 시음하면서 편견에 가득 찬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은 것이 기록에 남아있다. 한 사람은 프랑스 와인을 맛보면서 “이건 분명히 캘리포니아산이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또 다른 사람은 캘리포니아 와인을 맛보면서 “오케이, 이제야 프랑스 와인으로 돌아왔네!”하고 격찬했던 엄청난 실수가 훗날 두고두고 화제가 됐던 것이다. 이것은 그때 시음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언론인인 타임 매거진의 조지 테이버가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들었던 코멘트들로 이것이 보도되면서 심사위원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와인업계를 뒤흔든 1976년 ‘파리의 심판’이 나파밸리의 이름을 세계의 와인 지도에 올려놓은 역사적 사건이었다면, 30년만에 열린 이번 리매치는 캘리포니아 와인도 오래 숙성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또 다른 ‘역사의 심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30주년 시음대회에서 나파와 런던의 시음 결과를 종합해 매겨진 순위
(괄호 안 숫자는 76년 시음회때 순위.)
1. 1971 Ridge Vineyards Monte Bello, Santa Cruz Mountain (5)
2. 1973 Stag’s Leap Wine Cellars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1)
3. 1970 Heitz Martha’s Vineyard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9)
3. 1971 Mayacamas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7)
5. 1972 Clos du Val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8)
6. 1970 Chateau Mouton-Rothschild, Paulliac (2)
7. 1970 Chateau Montrose, Saint Estephe (4)
8. 1970 Chateau Haut-Brion, Graves (3)
9. 1971 Chateau Leoville-Las-Cases, Saint-Julien (6)
10. 1969 Freemark Abbey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10)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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