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년만의 ‘리턴 매치’ 미국 KO승!

2006-05-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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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 미국 와인 대결①

76년 첫 시음회서 미국 우승
86년 재격돌서도 다시 승리
올해 대결선 1~5위 ‘싹쓸이’

지난 5월24일 전세계 와인애호가들의 관심은 온통 나파 밸리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 대 미국의 와인 대결에 쏠렸다.
그리고 그 대결은 30년만에 다시 한번 미국, 즉 나파 밸리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나파의 와인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와인임이 천하 만방에 공표되었다. 또한 이날 미국은 승리 정도가 아니라 1위에서 5위까지 모두 나파 산 와인들이 차지함으로써 프랑스 와인들은 하늘만큼 높던 코 납작해진 것은 물론 세계 최고의 자리를 내주고 내려와야만 될 형편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그 배경설명을 하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전인 1976년 5월24일, 파리에서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맛을 겨루는 특별한 와인시음회가 열렸다. 이를 주선한 사람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와인샵과 와인 학교를 운영하는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로, 그는 당시 유럽에서 모두들 무시하던 캘리포니아 산 와인을 높이 평가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와인 콘테스트에는 프랑스 와인과 요식업계에서 내노라하는 최고 명성의 전문가 9명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고, 맛 대결에 붙은 와인들은 버건디 지방의 4개 백포도주 대 캘리포니아의 6개 샤도네, 그리고 보르도 지방의 4개 그랑 크루 적포도주 대 캘리포니아의 6개 카버네 소비뇽이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된 심사결과, 이날 최고 와인으로 선정된 레드 와인은 스택스 립 와인 셀라(1972 Stag’s Leap Wine Cellars), 화이트 와인은 샤토 몬텔레나(73 Chateau Montelena)로 모두 나파 산이었다. 그리고 레드 와인의 경우 2위부터 4위는 70년산 무통 로쉴드, 70년 오브리옹, 70년 몽트로즈 등으로 간신히 보르도의 품위를 지킨 반면 화이트 와인은 2위만 프랑스산 73년 뫼르소-샤르므였고 3위 몬터리카운티 산 샬론, 4위 나파산 스프링 마운튼으로 미국이 휩쓸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와인의 참패였고 이 시음은 와인업계에 지진이 일어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놀라움과 자긍심이 얼마나 높았던지 아직도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들을 방문해 시음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 ‘세기의 와인대회’(wine tasting of this century)라고 불리는 76년 대회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당시 최고의 와인으로 뽑힌 캘리포니아 와인들은 대부분 와인애호가들에게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고 그나마 제조 양이 적어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격은 그 때 6~20달러선으로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이다.
만일 그 대회에 권위있는 프랑스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포진하지 않았던들 프랑스인들은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음 전에도 뉴욕에서 미국와인 대 프랑스 와인의 콘테스트가 열린 적이 있었고 그 때도 미국산 샤도네가 이겼는데 프랑스인들은 ‘심사위원이 미국인들이다, 프랑스 버건디 와인은 오랜 운송기간 맛이 변질됐을 수 있다’며 트집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그 누구도 꼼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6년 뉴욕에서 똑같은 와인들을 놓고 다시 한번 미국 대 프랑스가 붙는 시음대회가 열렸다. 첫 대회가 3~6년 숙성한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들을 평가했다면 이번에는 세월이 흘러 13~16년된 와인들의 맛을 겨루는 것이니 과연 얼마나 잘 숙성했는지, 숙성한 결과가 첫 결과와 같은지를 알 수 있는 대회였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결과 이번에도 미국산이 1위(Clos du Val)와 2위(Ridge Vineyards)를 차지했다. 이것은 또 한번 놀라운 결과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와인비평가들은 프랑스 와인은 숙성을 오래 해야만 제 맛을 내기 때문에 파리 시음대회에서는 캘리포니아 산 와인이 더 유리했었다고들 떠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76년 파리 시음대회에 출품됐던 와인들로 시음결과의 순위대로 썼다. 우승한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72년 카버네 소비뇽과 샤토 몬텔레나의 73년 샤도네는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화이트 와인>
▲Chateau Montelena 1973 ▲Meursault-Charmes 73 Roulot ▲Chalone Vineyard 74 ▲Spring Mountain Vineyards 73 ▲Beaune Clos des Mouches 73 Drouhin ▲Freemark Abbey 72 ▲Batard Montrachet 73 Ramonet-Prudhon ▲Puligny-Montrachet Les Pucelles 72 Leflaive under the Sichel label ▲Veedercrest Vineyards 72 ▲David Bruce Vineyards 73
<레드 와인>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Chateau Mouton-Rothschild 70 ▲Chateau Montrose 70 ▲Chateau Haut-Brion 70 ▲Ridge Montebello Vineyard 71 ▲Chateau Leoville-Las Cases 71 ▲Heitz Martha’s Vineyard 1972 ▲Clos du Val 72 ▲Mayacamas Vineyards 1971 ▲Freemark Abbey 68



◀24일 나파밸리의 코피아 센터에서 열린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 시음회에서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윌프레드 재거가 와인의 향을 맡고 있다.


▶1976년 파리 시음대회에 출품됐던 캘리포니아의 레드 와인들. 왼쪽부터 하이츠,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 프리마크 애비, 마야카마스, 클로 뒤 발, 리지 비니어드의 카버네 소비뇽.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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