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셀나무/ 여유의 철학

2006-05-2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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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가 고향인 저는 충청도 사람들을 멍청도 사람이라고 놀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지금도 저의 아내는(서울 토박이입니다) “왜 그렇게 똑 부러지지 못하고 멍청하게 있다가 당하느냐”며 “충청도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농담합니다. 완전히 무시하며 비웃는 말이 아니라 웃으면서 주고받는 농담입니다. 제 두 아들은 각각 엄마와 아빠를 닮았습니다. 큰 아이는 똑똑하고 자기 일 스스로 알아서 잘 챙깁니다. 둘째는 아빠를 쏙 빼닮아 다른 사람이 다 찾아 즐
기고 난 후에야 깨닫는 수준입니다.

제가 그렇게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이 너무 짧아서 그렇습니다. 너무 머리가 빨리 회전해 이것저것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다 보면 본래 내가 하여야 할 본질적인 사명을 등한 시할 때가 많이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충청도 출신이라지만 저도 본래 그렇게 느리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려면 먼저 방 청소를 끝내고 하는 ‘결벽증’ 수준이어서 공부 한 시간하려면 방 청소를 세 시간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던 꼼수였습니다. 철이 들고 나니 본질적인 것을 바르게 한 시간 하기위해 부수적인 것에 너무 신경 썼다는 자책감과 함께 좀 멍청하게 살아야하겠다는 인생철학이 생겼습니다. 예수님도 영혼을 구하는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하여서 비본질적인 것에 대하여는 멍청이 수준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닮아 갈려고 애씁니다.

충청도 출신이기에 또 하나 “좀 멍해도 동작은 빠르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인생이 짧아서 그렀습니다. 저는 이제 5학년 2반(52세라는 뜻. 편집자 주)학생입니다. 저의 아버님은 5학년 9반 때 천국을 가셨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아버님의 마지막 세대를 살고 있고 이제 천국 갈 날이 짧게 남았구나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70-80 평생을 살면서 23년 정도를 잠자는데, 8년 정도를 먹는데, 2년 정도를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데 써버리고, 정작 본질적인 일을 하는데 고작 몇 년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이 바짝 들 수밖에 없어서 동작은 빠르게 하고 삽니다.


이민의 삶에서 빠르지 못한 사람들은 손해보고 삽니다. 기차가 다 지나간 후에 손해 봤다고 땅을 구릅니다. 그러나 내가 좀 멍청해야 다른 사람이 득 좀 보는 것이고, 내가 좀 멍청해야 짧은 인생 속에서 여유부리며 사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사명에 동작이 빠르고 비본질적인 것에는 여유 있게, 좀 멍청하게 살아봅시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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