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울너럭/색안경의 힘

2006-05-0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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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규 새크라멘토 부흥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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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나쁜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데 필요한 것이 도수에 맞는 안경이라면 강한 햇살에 눈을 보호하면서 사물을 순하고 시원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색안경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의미로 우리 사회에서 사용된다. 신기철, 신용철의 <새 우리말 큰사전>에는 “색안경 : 주관이나 감정에 얽매인 관찰, 편협(偏狹)한 관찰”이라 썼고, 그래서 “색안경을 쓰고 보다” 라는 예문을 들었다.
주관이라 함은 자신이 중심이 된 것이고, 감정이라 함은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편협한 관찰은 어떤 사실을 넓게 볼 수 없게 만들며, 왜곡되게 보게 만드는 괴력이 있다. 이런 것이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사람은 사납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다니면 반드시 일이 난다, 혼자 사는 여자는 반드시 바람기가 있다. 한 번 사고를 친 사람은 반드시 또 사고를 친다, 등등”
사람과 사람이 맞부딛쳐서 살아가는 속에는 관계라는 것이 있다. 어떤 관계를 통해서 얽히고 얽힌 그 속에서 서로를 신뢰하면서 공동체를 이룬다. 그런데 그 공동체를 성숙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색안경의 힘이다. 좁은 사회일수록 이 색안경의 힘은 크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라 한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고는 주유원이 유리창을 닦아주는데 시원찮게 닦더란다. 그래서 다시 닦으라고 했단다. 주유원은 다시 닦았고, 여전히 더럽다고 생각한 그는 그에게 노발대발했단다. 그때 옆에 있던 부인이 “당신 안경을 보세요” 라고 했단다. 자신이 쓰고 있던 안경이 뿌옇게 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내놓은 대소변은 냄새는 좀 난다 싶지만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것은 더럽다고 생각하고 냄새가 많이 난다고 생각한다. 다분히 주관이 섞인 생각이다.
이민 사회는 좁은 사회라 이 색안경의 힘이 다른 지역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많은 공동체는 성숙하지 못하다. 그 공동체에는 그 색안경으로 인한 소문이 정설처럼 돌아다닌다. 누구든 한 사람과 10번 이상 친숙한 대화를 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 들은 소문만으로도 색안경을 낀다. 그리고 그 눈으로 그 사람을 본다. 그리고는 떠돌아 다니는 소문의 기류에 신나게 편승하여 함부로 사람들을 난도질한다.
그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소문만 믿고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는 것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누구를 만나도 색안경이 아닌 도수에 맞는 안경을 쓰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보아야 볼 것을 볼 수 있고, 알아야 할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래야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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