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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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명화 ‘표류’

2006-04-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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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상륙 두남녀 신분 뒤바뀌어 우습고 신랄한 정치사회 풍자 영화
이탈리아의 여류감독 리나 베르트뮐러가 각본도 쓴 어금니가 시큰할 정도로 신랄한 정치사회풍자 영화로 배꼽 빠질 정도로 우스우면서도 눈물이 찔끔 나게 심금을 울린다. 이 영화로 베르트뮐러의 이름이 미국 영화계와 팬들에 알려지게 됐다. 1975년작. 부제는 ‘8월의 푸른 바다에서의 비상한 운명에 의하여’(By an Unusual Destiny in the Blue Sea of August).
이탈리아 북부에 사는 건방진 부르좌들이 여름 휴가차 시실리에 내려와 요트를 전세 내 바다로 나간다. 이들 중에 섹시한 얼굴과 몸매를 한 라파엘라(마리안젤로 멜라토)는 냄새 나는 셔츠에 텁수룩한 수염을 한 게을러빠진 갑판선원 제나리노(지안칼로 지아니니)를 놀려대는 것이 큰 즐거움. 라파엘라는 제나리노의 공산주의 사상과 더러운 모습을 마구 놀려대는데 제나리노는 이에 무반응.
그런데 배가 그야말로 뜻밖의 운명에 의해 표류하면서 무인도에 제나리노와 라파엘라 단둘이 남게된다. 여기서부터 주인과 종의 관계가 뒤바뀌면서 라파엘라는 살아남기 위해 제나리노에게 의존하게 된다. 라파엘라는 처음에는 제정신을 못 차리고 제나리노를 부려먹으려고 하나 제나리노는 이에 코방귀를 뀌어댄다.
제나리노는 서서히 라파엘라의 허영과 자존심을 박탈해 가면서 이 여자를 완전히 자기 하녀로 만들어버린다. 원시인의 삶을 살면서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라파엘라는 마침내 제나리노에게 고분고분하게 구는데 궁극적으로 둘은 육체마저 나눈다.
제나리노와 라파엘라는 후에 구조되나 둘의 섬에서의 삶이 두 사람에게 묘한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제나리노는 자기 뜻과 관계없이 라파엘라를 진짜로 사랑하게 되고 라파엘라도 이 남자에게 감정을 느끼나 자기 위치를 찾아간다. 눈이 큰 지아니니와 약간 모니카 비티 분위기가 나는 멜라토의 화학작용이 완벽하다.
Koch Lorber는 이 영화와 함께 역시 베르트뮐러가 감독하고 지아니니가 주연한 2차대전의 악몽을 헤쳐나가는 이탈리아의 서푼짜리 카사노바의 삶을 그린 걸작 ‘7인의 미녀’(Seven Beauties·1976)를 DVD로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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