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이블에도 ‘신·구 세대차’ 있다

2006-03-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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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구세계’와인 암호문 처럼 읽기 어려워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신세계’는 포도 품종·생산지 등 잘 설명

“미국인들은 레이블에 동물 그림이 그려진 와인을 좋아한다”고 마케팅 정보회사 AC 닐슨이 발표했다. 이 회사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소비자들은 레이블에 물고기, 원숭이, 캥거루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는 와인을 그렇지 않은 와인보다 2배 이상 많이 구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꼬리를 말아 올린 원숭이 한 마리가 줄에 매달린 그림의 상표가 부착돼 있는 뉴질랜드 산 ‘몽키 베이’(Monkey Bay), 물새가 그려진 캘리포니아산 `스모킹 룬’(Smoking Loon), 또한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수입 와인으로 꼽히는 호주 산 ‘옐로 테일’(Yellow Tail)은 캥거루가 그려진 레이블로 유명하다.
미국인은 왜 동물 레이블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쉽기 때문이다.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와인 병의 레이블을 읽는 일이 암호 해독하는 것처럼 어려운데 이때 귀여운 동물 그림은 왠지 친밀하게 느껴져 쉽게 손이 가는 것이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레이블. 초보자들은 레이블 읽기가 어렵다




북가주 소노마카운티 산 샤도네 레이블. 와이너리 이름과 포도품종, 빈티지, 생산지역만 간단하게 기재돼 있다.

당연히 프랑스에서는 이런 현상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에서 와인의 레이블에 동물 그림을 넣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처럼 와인의 레이블은 와인의 얼굴로서 와인 선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누구나 자기 경험을 돌이켜보아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와인 샵에서 와인을 고를 때 무엇을 보고 고르는가? 와인을 잘 아는 애호가가 아닌 다음에야 선반에 죽 늘어선 와인 병들의 레이블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그 중 마음에 드는 것, 맛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을 집어들게 되어 있다.
문제는 레이블에 쓰여진 내용이 초보자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나 호주, 칠레, 남아공, 뉴질랜드 등 ‘신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한번 익숙해지면 판독하기가 쉬운데 반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지의 ‘구세계’ 와인들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신세계의 대표인 미국 산 와인을 보면 와이너리의 이름과 함께 포도품종이 적혀 있어서 고르기가 매우 쉽다. 예를 들면 ‘Robert Mondavi(와이너리 이름)/ Cabernet Sauvignon(포도 품종)/1997(빈티지·수확 연도)/Napa Valley(생산지역)’ 등이 명기돼 있고 이 외에 작은 글씨로 알콜도수(13.5%)와 용량(750ml)이 적혀 있다. 이것은 호주, 칠레, 남아공 와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구세계의 대표인 프랑스산 와인을 보면 포도품종은 적혀 있지 않고 ‘샤토’(Chateau) 혹은 ‘꼬트 드’(Cote de), ‘끌로 드’(Clos de), ‘론’(Rhone) 등으로 시작하는 불어가 잔뜩 적혀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와인이 어려운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이것은 와인 생산지역이나 제조자, 즉 와이너리의 이름들인데 소비자는 이 이름만을 보고 무슨 품종의 와인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이유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 지역마다 재배되는 포도품종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명이 곧바로 포도품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르도에서는 카버네 소비뇽, 카버네 프랑, 멀로, 쁘띠 베르도, 말벡의 다섯 가지 적포도주 품종을 재배하기 때문에 보르도 와인 하면 카버네 소비뇽을 주 품종으로 빚어진 레드 와인임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또 버건디(부르고뉴) 와인이라면 100% 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이고, 샤토뇌프 뒤 파프라고 쓰여진 것은 론 지방에서 생산된 적포도주이며,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피에몬테(또는 바롤로, 바바레스코) 와인은 네비올로 품종의 적포도주, 투스카니 지역 와인은 키안티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와인 레이블에는 세부적인 지역명(예: 나파밸리 내 Stags Leap District, 보르도 내 Haut Medoc 등), 와인의 등급(Grand Cru, Cru Bourgeois 등), 병입된 곳(Estate Bottled, Mis en Bouteille au Chateau), 와인의 당도나 숙성도(Brut, Demi-sec, Kabinett, Spatlese) 등이 표기돼 있으니 와인의 초보자가 레이블만 보고 어떤 와인인지 짐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미국을 포함, 대개의 ‘신세계’ 와인 소비자들은 포도품종(카버네, 샤도네, 멀로 등)과 함께 와이너리 이름이 명기된 레이블을 좋아한다. ‘샤토’라는 말이 쓰여진 프랑스 와인에 대해서는 ‘잘난 체’한다는 느낌과 함께 거부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적이 있다.
때문에 요즘 와인 과잉생산과 판매부진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프랑스의 와이너리들은 신세계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레이블에 포도품종을 기재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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