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기분에 귀 기울이기’
2006-03-06 (월) 12:00:00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다 너희들 잘 돼라”고 하는 부모들의 말이 “unfair”하게 느껴지지만 그냥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듣는다고 한다.
동서 문화를 초월해서 남자는 기분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키워진다. 생존을 위해 들판에 나가야했던 수백만년 인류 진화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사실 남자는 기분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남자가 기분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를 공격할 때이다. 그러나 욱하는 “불뚝 성질”의 폭발적인 표현은 21세기 문명에서는 생산적인 방법이 못된다.
감정을 속으로 삭일 때 심장질환, 고혈압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는 수많은 의학연구 발표가 있었고 또 그 이후 분노는 폭발시킬 때 더 심각한 의학적 문제를 초래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가끔 40대, 50대 중·장년의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인생에서 큰 장애물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분노,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은 삶의 길목마다 도사리고 있다. 내가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고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이러한 감정을 비생산적으로 처리하지 않게 된다. 비록 지적 능력이 뛰어났어도 정서관리 능력이 불완전하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게 된다.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은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익힐 수 있는 행동기술이다. 부모로서 다음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실에 입각해서 자녀의 기분을 물어보아 주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영어 에세이 시험에서 65점을 받고 온 자녀에게 “시험에서 65점을 받았는데 지금 어떤 기분이니?”라고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아이는 학교에서 일단 다른 학생들과 비교되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주관적인 평가는 이렇게 누군가가 자신의 기분을 물어보아 주고 그 대답을 스스로 할 때 좀 더 명확하고 또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기분에 귀를 기울여 준다. 가령 아이들이 “I am late for my class”라고 말하면서 허둥댈 때 이 말을 하는 아이의 기분에 귀를 기울이면 부모로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좀 일찍 서둘러라 그랬지. 너는 애가 왜 맨 날 그 모양이니?” 이런 말은 아이의 방어본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각하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안한 심리에 부모가 귀를 기울인다면 “걱정되지? 다음부터는 이런 걱정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 할 때 사람은 비로소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부모의 생각과 기분을 자녀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성적이 너 그게 뭐니? 제발 공부 좀 해라!” 이건 자녀를 질책하는 것이지 부모의 생각과 기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이런 점수를 받아온 것이 실망스럽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면 바로 그 생각과 기분을 그대로 전달하면 되겠다. “엄마는 이 점수가 아주 실망스럽다. 나는 네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최선을 다 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아주 실망스럽다.”
정서관리 능력은 자의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러나 그 능력은 누군가가 기분을 물어보아 주고 그 물음에 답할 기회를 주고 기분에 귀 기울여 주고 또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듣게 될 때 생겨나게 된다. 이런 정서관리 능력이 생겨날 때 그 사람이 지닌 지적능력도 비로소 제 몫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리차드 손
<심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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