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지현의 와인 이야기

2006-02-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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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멋있다

전문가는 자기의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멋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더욱 멋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순진함과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엔 많이 아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가 적어 덜 멋있습니다. 아는 것 그 자체에 묶여있기 때문이지요. 가득 찬 잔에는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안다는 것은 때때로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한번쯤 와인을 마셔본 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 와인의 맛이 시었다던지 떫었다든지 조화로웠다든지 등을 얘기할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미 와인 전문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좀더 진지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약간의 격식과 함께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 포도로부터 발효된 수백 가지 다른 과즙의 맛과 향과 색깔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복잡한 라벨을 이해할 수 있으며 각 나라의 지형과 날씨와 흙의 성질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과 정열이 필요하고 또 매우 진지해져야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우리는 그 정도까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미 전문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치나 된장찌개 혹은 소주나 맥주 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맛을 구분하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맛과 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전혀 괴로워하지 않고 와인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입맛은 각자의 지문처럼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신은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술꾼이 되느냐 아니면 격식과 교양과 지성을 갖춘 와인전문가가 되느냐의 차이점만 알면 됩니다. 물론 ‘꾼’이 되는데 전혀 잘못된 점은 없습니다. 꾼은 곧 열정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열정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계획과 인내와 운과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을 필요로 하듯이 술꾼과 와인전문가는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와인 전문가는 사실 인생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한 잔의 와인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할 뿐 아니라 와인을 품평하는 것은 인생을 논하는 것과도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와인 전문가는 와인의 잘못된 점보다는 아름다운 점을 이야기합니다. 와인 전문가는 값보다는 맛에 영향을 받습니다. 와인 전문가는 명성이나 라벨보다는 와인 자체를 즐깁니다.
전문가는 멋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정열적으로 와인 잔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와인 전문가 정지현씨의 칼럼을 매달 한편씩 연재합니다. 정지현씨는 나파 밸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버클리에서 캘리포니아 와인 아카데미(California Wine Academy)의 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의 와인전문지나 웹사이트에 미국 와인에 대한 글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여행과 글쓰기와 바람을 좋아하며, 미국의 와인에 대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그 즐거움을 나누면서 더불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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