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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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잔 맛-향 좌우

2006-02-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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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했다가 후회할 때가 있다. 화이트 와인을 시켰는데 미지근한 온도로 서브하거나, 레드 와인을 시켰는데 작고 옹색한 잔에 가득 따라줄 때 그렇다. 와인은 적절한 온도에서 마시는 것, 또 적절한 모양의 글래스에 따라 마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잔’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잔에 따라 마시느냐에 따라서 와인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버네 소비뇽이나 피노 누아를 작달막한 잔에 따라 마신다면 그 복합적인 맛과 향을 느낄 수 없다. 실제로 와인글래스 전문회사 ‘리델’(Riedel)이 실험한 바에 의하면 같은 와인을 모양이 다른 여러 글래스에 따른 후 시음했더니 각각 맛이 크게 달라 전문가들조차 모두 다른 와인인 줄 알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보르도 그랑 크루
(Bordeaux Grand Cru)
카버네 소비뇽, 멀로, 산지오베제 등 레드 와인이 충분히 숨쉬며 향을 풀어내면서 자기가 가진 복합적인 맛과 성질을 드러내기 좋은 모양이다.



버건디 그랑 크루
(Burgundy Grand Cru)
와인의 부케를 충분히 풀어내고, 말린 부분 때문에 와인이 혀 앞쪽에 먼저 닿게돼 과일향을 최대한 음미할 수 있다. 버건디, 바롤로, 피노 누아 마시기에 적합.




진판델/ 키안티
(Zinfandel/ Chianti)
프랑스 와인을 위한 글래스만을 만들던 리델이 1991년 처음 이탈리아 와인을 연구하며 만든 잔. 키안티 클라시코의 맛을 최대한 살려주는 모양이다.



리즐링 그랑 크루
(Riesling Grand Cru)
산도가 높고 과일향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가벼운 리즐링의 진수를 잘 표현하는 잔. 세미용과 부브레를 마시기에도 좋다.



샤블리/ 샤도네
(Chablis/ Chardonnay)
부드럽고 리치하며 산도가 낮은 샤블리(샤도네)의 고급스런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모양. 피노 그리지오, 소비뇽 블랑등 백포도주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몽라셰(Montrachet)
버건디에서 생산되는 몽라셰는 복합적인 맛과 깊이, 높은 알콜, 적당한 산도를 가진 고급 백포도주로 그 특별한 향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둥글고 크게 만들어졌다.



숙성한 보르도
(Mature Bordeaux)
오래 숙성해야 제맛을 내는 보르도 와인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잔. 묵은 와인의 맛과 향과 색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면서 조금 작게 만들어졌다.



시라(Shiraz/ Syrah)
호주의 시라를 집중 시음하면서 창안한 글래스로 그 진한 빛깔과 강렬한 향, 과일 맛을 팔레트에 느낄 수 있다. 샤토뇌프 뒤 파프, 말벡, 무르베드르, 그레나슈 등에도 좋은 잔.



로제(Rose)
백포도주의 성질을 많이 가진 로제의 연한 빛깔과 풍부하고 신선한 과일향, 높은 산도를 느끼기에 좋은 모양.




소테른(Sauternes)
최고의 디저트 와인으로 꼽히는 소테른을 위해 고안된 잔으로 그 특이한 곡선이 살구향을 강조한다. 산도와 달콤함, 귀족적인 맛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샴페인(Champagne)
한병에 수천만개의 거품이 나온다는 샴페인은 그 버블이 올라오는 모양도 감상하면서 톡 쏘는 맛을 오래 즐기기 위해 ‘플루트’(flute)라고 불리는 좁고 긴 잔을 사용한다.



물잔(water)
와인 잔들과 비교하기 위해 사진을 넣었다. 리델사가 식당에만 판매하는 물잔으로 일반 판매는 하지 않는다.


혀가 느끼는 부위 각기 달라
종류따라 크기·모양 다르게

이처럼 와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각 품종마다 그 맛의 특성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특별 고안된 모양의 잔이 필요하다. 왜 잔의 모양이 중요한가 하면 우리의 혀가 맛을 느끼는 부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단맛(앞부분), 쓴맛(뒷부분), 신맛(양옆), 짠맛(가운데) 등 혀는 음식이 닿을 때 각각 다른 곳에서 다른 맛을 느끼는데 이를 이용, 잔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 만듦으로써 와인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와 처음 혀에 닿을 때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와인 글래스에 관해서는 명가 ‘리델’(Riedel)이 선구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이 회사는(지난번 기사에서 호주산이라고 잘못 쓴 적이 있는데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와 혼동하여 빚어진 실수였다. 죄송) 250년전인 1756년 창립된 이래 10대째 계속 가업을 이어왔는데 1950년대 이후 각 품종의 와인 맛을 계속 연구하며 기능을 위한 모양을 제작하고 있다.
24% 크리스탈로 만드는 리델 잔은 입으로 불어서 만든 수제품 소믈리에(Sommeliers) 시리즈가 가장 비싸고 그 다음으로 비넘 익스트림(Vinum Extreme) 시리즈, 비넘(Vinum) 시리즈, 와인(Wine) 시리즈, 우버처(Ouverture) 시리즈, 레스토랑(Restaurant) 시리즈, 그리고 다리를 과감하게 없앤 오(O) 시리즈가 있다.
가격은 천차만별로 글래스 당 10달러로부터 100달러가 넘는 것도 있다. 다음은 수십가지 모양의 리델 글래스 중 대표적인 모양을 소개한 것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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