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날마다 교육현장에서-교회와 공부

2006-01-3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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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가 바르고 생각이 반듯한 M은 열심히 교회 다니며 다른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내가 아끼는 학생중의 하나이다. 그는 5년 전 미국에 이민 와 영어에 한창 재미가 붙어야 할 무렵 교회 활동에 전념하다 대학 입학 필수 과목을 제때에 마치지 못해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스스로는 2년제 대학에 들어가 편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위안을 삼으며 나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댔지만 나는 그가 곧바로 4년제 대학에 들어가 몸으로 부딪히며 제대로 대학 생활하기를 바랐다.
M의 경우는 일찍 철이 들었고 부모님의 재정적 지원이 가능하여 그가 열심을 내면 충분히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업에 좀 더 열심을 내야 할 시점에서 편한 길을 택해버려 졸업한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2년 전이나 별 진전이 없다. 그의 부모님은 그와 마주 앉으면 학교 얘기로 M의 속을 불편하게 하고 그는 그것도 자신이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지 그들의 불평에 말 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허공을 향해 긴 한숨만을 뿜어낸다.
어중간한 나이에 이민 와 편하게 소속된 곳이 교회인 것이 한편 다행이긴 하나 공부를 해야할 시점에서 점차 편한 길로 들어서는 그가 나는 못내 서운하다.
그는 나에게 세상일엔 관심이 없다고 분명하게 힘주어 말하지만 그 얘기는 한창 학업에 온 힘을 쏟아야할 나이의 그가 어딘가 그것을 핑계로 대충 편한 길에 안주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이 스무 살에 벌써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는 종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것을 핑계로 더 이상 다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게 확인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이상 다른 주문을 말아달라는 선전 포고로 들려 그의 부모가 끊임없이 기회가 되면 그에게 잔소리하며 설득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성직자의 길은 신과 자신만의 관계로 남이 알아주건, 그렇지 못하건 홀로 가야하는 외로운 길 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또래의 학생들과 기성 세대가 하는 것처럼 일을 만들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지 늘 분주하고 바쁘다.
요즘 신세대의 취향이 달라져서 그들의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나무랄 생각은 없으나 자기 앞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선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큰길에서 당당하게 그가 원하는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의 부모님은 공부를 제대로 마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늦지 않으니 대학을 진학했으면 하는 것이고 학생은 이미 진로를 정했는데 대학을 들어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렇게 이민 가정 자녀들의 신앙관 역시 부모들의 생각과 기대와는 다르다. 부모들은 이런 종교 관념과 의식에 대한 문제엔 턱없이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반듯한 자녀는 단지 부모들의 이상일 뿐 더 이상 이 시대의 현실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녀에 대한 기대 역시 바뀌든지 아니면 그런 자녀들의 취향에 맞게 우리 사회의 인식을 뜯어고치든 해야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녀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과정 역시 거치든 안거치든 부모들이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새해가 되면 연례 행사처럼 자녀에게 거는 기대로 마음이 무겁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대조차 삶의 무게에 짖눌려 잊고 사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가슴 한 구석에 떡 버티고 있는 자식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에게 자녀는 심심하면 한번씩 툭툭 건드려 덧나는 고질병처럼 생각나면 한번씩 속을 뒤집어 놓는 미워할 수 없는 영원한 애물단지인 것이다. 그런 애물단지와 올해는 그냥 친해지자, 예의 바른 친구같이.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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