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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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없는’★★★½

2006-01-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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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없는’★★★½

규라가 수레에 시체들과 함께 실려 매장지로 운반되고 있다.

(Hateless)

차분하게 묘사한 나치스 만행

또 하나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홀로코스트’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처럼 가해자들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수용소 얘기를 마치 집단 공동체 숙소의 얘기를 보여주듯 사실적이요 담담하게 묘사했다. 충격적 수단 대신 이렇게 시각적으로 상세히 묘사된 수용소의 면모는 서정적이며 때로는 코믹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 고통의 깊이가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2002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스의 자전적 얘기를 영화 ‘말레나’로 오스카상 촬영상 후보에 올랐던 라요스 콜타이가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감독은 흥분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주인공 소년의 드라마를 가깝게 보여주면서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고 힘있게 서술한다. 촬영 등 기술면에서도 뛰어나다.
주인공은 부다페스트의 사업가 아들인 14세난 조용한 소년 규라 코베스(마르셀 나지). 헝가리를 점령한 나치스가 부모를 모두 잡아가고 홀로 남게 된 규라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경찰에 의해 끌려 내린 뒤 유대인 수용소에 수용된다.
규라는 먼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뒤 이어 부헨발트를 거쳐 마지막으로 독일의 자이츠 노동시설에 수감된다.
이런 과정에서 규라의 몸이 수척해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거의 뼈만 남은 살아있는 인형의 모습을 띠게 된다. 수용소의 참담한 삶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을 찌른다. 규라는 수용소를 전전하며 여러 사람들과 친해지나 그들은 모두 사라진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규라에게 미군장교(다음 007 대니얼 크레이그)가 헝가리만 말고 세계 어느 곳에라도 갈 수 있다고 권하나 규라는 고국으로 돌아간다. 내레이션으로 진행돼 밀접감이 큰데 고국에 돌아와서도 죽음을 본 규라는 거의 무표정한 인간이 된다. 마치 외계인 같다.
강렬하고 가슴 아프나 희망이 보이는 인간 조건에 관한 드라마로 나지의 연기가 훌륭하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다. 성인용. Think Film. 로열(310-477-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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