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주의 대표 와인 ‘진판델’ 다시 뜬다”

2006-01-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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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전부터 재배… 10년전부터 다시 주목
진하고 달며 알콜 높아… 베리 맛이 큰 특징

요즘 와인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호주(Australia)는 적포도주 시라(Syrah, Shiraz)가 유명하다. 아르헨티나는 말벡이 대표 와인이고, 뉴질랜드는 소비뇽 블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칠레는 카르메네르, 독일은 리즐링, 캐나다는 아이스 와인, 포르투갈은 포트… 각 나라마다 그곳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서 가장 좋은 열매를 맺는 대표적인 포도품종과 와인이 한두개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표 와인은 무엇일까? 미국내에서도 미전체 와인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할 만한 포도는?
그것이 ‘진판델’(zinfandel)이라고 하면 놀라거나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진판델은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붉은 포도로(첫째는 카버네 소비뇽) 요즘 들어 그 진가가 제대로 평가되기 시작해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진판델을 캘리포니아의 포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전세계에서 진판델을 재배하는 곳으로 가주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진판델은 130여년전부터 가주에서 재배되어 왔지만 그 품종의 모체가 무엇인지, 원산지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DNA 검사를 통해서야 유고슬라비아가 원산지이며, 이탈리아 포도 프리미티보(Primativo)와 같은 품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진하고 달고 태닌이 많은 진판델은 20세기 초 금주령 시대에 미국인들이 밀주를 만들 때 많이 사용했으나 이후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1975년 달콤하고 가벼운 ‘화이트 진판델’이 등장하면서 싸구려 ‘저그(jug) 와인’ 대량생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파 밸리의 서터홈(Sutter Home)이 처음 만들어낸 핑크빛의 ‘화이트 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 1980년대 이후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서터 홈과 베린저(Beringer), 리지(Ridge) 와이너리들이 만든 화이트 진을 마셔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진판델이 붉은 포도이며 적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정도로 아직까지 화이트 진판델이 적포도주 진판델의 인기를 훨씬 능가하고 있으며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화이트 진판델의 인기에 가려 생산량과 판매량이 급감했던 ‘진짜’ 진판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 사이. 1990년대 들어서야 진판델 고유의 맛과 개성을 발견한 와이너리들이 진판델을 주품종으로 사용한 진지한 적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캘리포니아만의 특별한 와인을 찾던 사람들이 진판델 애호가가 되었다.
진판델의 맛은 베리 맛이 가장 큰 특징으로 블랙베리, 블루베리, 블랙체리 향이 진하게 나며 감초와 라즈베리, 후추향, 스파이스도 느껴진다. 미디엄에서 풀바디, 진하고 태닌도 적지 않아 처음 마시는 사람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달며, 알콜 도수도 높기 때문에 포트 와인이나 진한 시럽을 마시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다.
포도알은 굵고, 검푸른 색이며 달콤하고 즙이 많아서 와인메이커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또다른 매력이자 장점인데 클라렛 와인처럼 약간 가벼운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늦게 수확한 포도로 포트 와인처럼 진한 스타일로 만들기도 한다.
주로 캘리포니아 북쪽, 소노마 카운티 쪽의 서늘한 해안 지역(Dry Creek Valley, Sonoma Valley, Lytton Springs, Geyserville)에서 좋은 품질의 와인이 많이 만들어진다.
좋은 진판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은 클라인(Cline), 드라이 크릭(Dry Creek), 레이븐스우드(Ravenswood), 리지(Ridge), 로젠블럼(Rosenblum), 털리(Turly), 세인트 프랜시스(St. Francis), 피치 캐년(Peach Canyon) 등이며 특히 다양한 진판델을 만드는 로젠블럼은 2005 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3위에 오를 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1월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판델 매니아 1만여명이 모여 수백 종류의 와인을 마시는 진판델 축제의 달이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못 가도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진판델 한병 사다가 집에서 마셔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아래는 최근 마셔본 진판델의 테이스팅 노트.



Rosenblum 2003 Zinfandel, Carla’s Vineyards

안타깝게도 약간 맛이 변질된 병을 오픈, 제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전문가들로부터 아주 좋은 평을 받았고 블랙 체리 맛과 스파이스가 생생해 다양한 음식과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18.99달러.




Ridge California 2002
Zinfandel Geyserville

부드럽고 여성적인 진판델로 특히 뒷맛이 깔끔하고 우아하다. 과일향은 풍부하지만 그다지 달지 않고 태닌도 많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25.99달러.



Frank Family Vineyard 2002 Zinfandel, Napa Valley

블랙베리의 맛이 힘차고 진하게 느껴지는 전형적인 진판델.
쏘는 듯한 후추향과 적당한 태닌의 밸런스가 아주 만족스런 와인이다. 25.99달러.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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