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토론토-밴쿠버

2006-01-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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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한 권/심현섭 대표(오늘의 책)

▶ 백광열 지음 한울

인왕산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를 캐나다 땅에 심는다면 어떻게 될까. 옮겨 심어서 잘 자라는 나무도 있지만 영 적응을 못하는 나무도 많다. 차나무와 양귀비 같은 것은 아무리 뿌리를 다치지 않고 있던 흙을 함께 옮겨도 살려내질 못한다.
살던 땅에서 오래도록 적응해온 체질이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 자란 나무보다는 아직 뿌리가 제대로 뻗지 않은 어린 나무가 옮기기에는 좀더 쉽다. 한곳에서 살던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타국으로 옮겨 산다는 일이 이와 같이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세계가 급속한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한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소위 글로벌 빌리지(지구촌)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국경이 희미해지고 문화가 희석되어 그야말로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시대의 추세라면 조상의 묘를 지키기기 위해 고향에 눌러 앉아있기에는 시대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급변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서 새로운 땅을 선택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캐나다에 삶의 터전을 찾아서 온 한국인들은 이곳이 자기 생존에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제 막 캐나다 땅에 한국인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고 다른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데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캐나다 주류 사회로의 진출을 시도하는 많은 한국인들 앞에 한인 청년 한 사람이 깃발을 올리고 힘찬 도전을 시도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에 이주한 백광열이 그 주인공이다. 힘들게 대학공부를 재수까지 하면서 마치고 계속해서 칼톤 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폴 마틴 수상의 경제고문을 거치면서 캐나다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마침내 자유당의 공천을 얻어 정치기반이 없던 밴쿠버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 차례 연방의원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세 번째 선거에서 패배한 후 그는 과감하게 다시는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될 때까지 대통령선거에 나가서 끝내는 대통령이 되고 마는 것만을 본 한국인의 눈으로는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다음 세대들이 캐나다 정치계에 진출하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인 누구든지 역량 있는 정치지망생을 세 번의 선거경험으로 돕겠다는 것은 대승적인 큰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얼핏 동키호테적인 과감한 도전과 모험정신을 가졌고, 한국인으로서의 투철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다. 캐나다 초기 이민 시대에 너무 앞서 가다보니 맞바람도 많이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의 캐나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많은 경험과 함께 박식한 제반 정보는 앞으로도 한인사회의 다음 세대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해 나가는 데 큰 거름이 되리라 보여진다.
그는 캐나다 이주 30년 세월에 담긴 도전과 실패 그리고 용기와 경험을 한데 묶어서 한 권의 책 「서울-토론토-밴쿠버」를 냈다. 자전 소설 형식으로 주로 연방의원 선거를 중심으로 한 캐나다 정치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한국인이 캐나다에서 한국인답게 살아갈 때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어떤 사람이 몸은 한국인이되 전연 한국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우리가 주목할 이유가 없다.
백광열씨의 캐나다 정치 경험이 다음 세대에 이어져서 그와 같이 한국적인 정체성이 뚜렷한 한국인들의 정치계 진출에 큰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밀알 하나로 남지 아니하고 떨어져서 거름되겠다는 그의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식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기서 본토인들과 경쟁해 이기려면 줏대와 배짱이 필요한데 그 근본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내 뿌리에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아야 함을 직접 터득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세계인과 국제화 즉 국제 경제 전쟁에서 영어권과 싸워 이길 수 있으려면 영어 단어 몇 개를 더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진정한 한국 사람이 되고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느낄 때만이 승리가 가능하다.“ 본문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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