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나무/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십시오.
2006-01-07 (토) 12:00:00
인생의 승리자는 강을 건넌 사람들입니다. 로마의 제 1차 3두 정치 시대를 연 시저는 갈리아(프랑스) 지역을 정복한 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의 시기로 군대 해산 명령을 받자 이에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소아시아를 정벌하면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유명한 말을
남겼던 시저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노라”고 선포하면서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평정합니다.
이스라엘에서 12지파의 아버지가 된 야곱은 ‘얍복 강’을 건넜습니다. 하란 땅에 보낸 20년간의 이민 생활에서 엄청난 부를 거머쥔 야곱은 가족과 모든 전 재산을 먼저 건네 보낸 후 하나님과 독대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얻는 복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창 32). 얍복 강을 건넜다는 것은 세상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우상을 섬기면서 살다가 우상의 종이 되어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가 되어서 삽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모세라는 지도자를 보냅니다. 모세의 영도아래 수백만 노예들이 홍해를 건넙니다.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노예의 삶에서 자유인의 삶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서 모세가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라고 하시면서 요단강을 건너가게 합니다. 요단강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통하여 믿음으로 건너는 강입니다. 그 믿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합니다. 다윗은 자식인 압살롬이 혁명을 일으키자 맨발로 ‘기드론 시내’를 건넙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33명의 맹장이 있었지만 자식을 향하여 칼을 세우지 않고 자신의 죄라고 울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넙니다(삼하 15장).
1,000년 후에 예수님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으로 오르십니다. 그 시내를 건너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기드론 시내는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는 강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이제는 얍복 강과 홍해와 요단강과 기드론 시내를 종합해 완성시킨 ‘보
혈의 강’을 건너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우리 모두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넙시다. 오늘도 에셀 나
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