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 찾기. 개(犬)

2006-01-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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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영철(문학평론가)

문화 찾기. 개(犬)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윤동주‘또 다른 고향 ‘중에서)

2006년 새해가 밝아 온다.
많은 동물 중에서 인간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
야생과 문명, 선과 악의 중간 매개로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경계선의 존재’. 무속신화에서는 죽음에서 현세로 되돌아오는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 상기 혜환의 시에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다가 광명을 맞이하는 전령으로서의 이 동물.
우리는 일찌기 개를 수호와 행복을 지키는 상징으로, 고대 그리이스 로마인들 역시 악성을 짖어서 쫓는다는 믿음에서 용기와 보호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개는 무엇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헌신하는 충성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갓난아기 때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를 지켜준 것도 바로 개였다. 18 C 영국의 저명 시인 포프(A.Pope)는‘인간론’에서, 소박한 인디언의 꿈은 죽어서 충실한 개를 동반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설화에 나타나는 개의 행위는 이른바 의견(義犬)이라 불리면서 인간과의 관계에서 충성과 의리, 희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북 오수리의 의견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여기에 인간이 추구하는 덕목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물로 불을 끈다는 것은 그만한 지능이 있으니 지(智)요, 주인을 위해 희생을 하였으니 인(仁)과 덕(德)이요, 불 속에 뛰어들었으니 용(勇)과 체(體)인 것이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특히 비참한 생활을 개로 표현하는가 하면 죽음과 타락, 파멸을 또한 개에 비유하고 있다. 성서에서는 어리석은 자, 비천한 자, 탐욕을 가진 지도자, 원수나 적대자, 남창, 무자비한 자, 허영과 위선에 가득 찬 자, 이기주의자, 탐식자, 반역자, 하수인등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불순과 경멸, 구박과 멸시,천대의 상징으로 멀리해야 할 동물로 여기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개똥참외’,‘개떡’ 등으로 하찮게 여기고 있으며 심지어 지역에 따라서는 식용으로 취급하기까지 한다.
고려 말 명문장가 백운 이규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록 천한 짐승이긴 하나 그 영특함과 지혜로움이 어느 동물이 너와 같겠는가.
짖고 물어도 좋은 것에 대하여 알려 줄 테니 잘 명심하여라
빈틈을 엿보고 재물을 훔치려는 자가 있거든 지체말고 짖고 속히 물어라
겉은 부드러우나 시기심을 숨기고 남의 약점을 알려고 웃음띠고 오는자는 짖어야 한다.
두리번거리며 괴상한 짓으로 남을 미혹하는 박수나 무당같은 자가 찾아오거든 너는 물어야 한다.
간교한 귀신이나 요사스런 도깨비가 슬쩍 들어오려 하거든 너는 짖고 쫓아야 한다.
(‘명반오문’命班獒文 중에서)

이처럼 개는 예부터 집 지키기, 사냥, 맹인 안내, 호신 등의 역할 뿐 아니라, 잡귀와 병 도깨비, 요귀 등에서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 사랑해 왔던 것이다. 특히 흰 개는 집안의 좋은 일이 있게 하고 재난을 예방하도록 경고도 해준다고 해서 선호해 왔으며, 귀와 머리가 누렇거나, 뒷다리만 희거나, 앞다리나 가슴 털이 희거나, 호랑이 무늬결이 있거나, 꼬리만 흰 검둥이거나, 검정 다리의 흰둥이는 상서로운 기운을 가짐으로서 집안에 경사와 복을 가져온다고 믿어왔다.
농가에서 누런 똥개(黃狗)를 많이 기른 까닭은 그 노란색이 풍년과 다신을 상징하고, 마당이나 초가 지붕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며, 보신의 색으로서 약효도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가 풍요와 부활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20세기 대표적 시인이자 비평가인 엘리옷(T.S.Eliot)의 시‘황무지’에서는 개가 발로 땅에 묻힌 시체를 파낸데서 연유한다.
개를 일상에 비유하는 속담이 적지 않다.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개꼬리 3년 두어도 황모(黃毛-쪽제비털) 못된다’, 개도 사흘이면 주인을 알아본다’ 등 긍정 부정의 사유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인간과 개의 오랜 역사에서 우리는 개를 보고 인간의 행위를 조명해 온 것이리라. 퀴니코스(Cynicos)는 견유철학자(犬儒哲學者)를 말한다. 즉 ‘개같은 삶’ 을 사는 철학자라 불리우는 디오게네스. 그는 벌건 대낮에도 등불을 켜들고 다니면서 외치고 있었다. ‘사람을 찾고 있소! 사람을 찾고 있소!’
이제 ‘사람’을 찾는 병술년 개의 해가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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