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7자매의‘세탁왕국’

2005-1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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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탁소 14곳 운영하는 美류형순씨와 여섯 동생

▶ 맏언니가 80년 시작

(LA미주본사) 한인 7자매 모두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고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인랜드에 사는 남가주한인세탁협회 류청일(57) 회장의 부인 류형순씨와 여섯 동생(이형기·오형숙·이춘재·이선영·이숙영·이완정씨)으로 이들은 랜초 쿠카몽가 등 인랜드를 중심으로 노스리지·어바인 등에서 각각 1~4개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7자매의 비즈니스는 내년에 17개로 불어날 예정이어서‘자매 세탁왕국’의 영토는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아무리 이민사회가‘공항 픽업 나오는 사람에 따라 장래 직업이 결정된다’고 해도 7자매가 모두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 더구나 막내(41)에서 맏이(57)까지 모두가 세탁업 한 우물만 판 20~25년의 베테랑들이다.
이들의 세탁업 종사 총 연수는 무려 150년에 육박한다. 하루에 맞는 고객만도 총 2천여 명. 이들 자매의 ‘세탁역사’는 맏언니 형순씨가 1978년 시카고로 약사이민을 오면서 시작됐다. 형순씨는 “세탁소 한번 해 봐라. 집도 빨리 장만할 수 있다더라”는 큰아버지(의사)의 조언에 귀 기울였고 80년 남가주로 이주, 남편이 시카고에서 쌓은 세탁경험을 살려 셔츠공장을 여는 것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종자돈 5천 달러를 다운하고 구입한 5만5천 달러짜리 업소였다. 형순씨는 그 후 미국에 온 부모(어머니는 재작년 별세)와 동업을 했고 동생들도 하나둘씩 합류했다가 나중에 각자 세탁소를 차려 독립했다. 이렇게 해서 불과 2~3년 만에 20대 중반이었던 막내를 포함해 7자매 모두가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10~20% 다운하면 10만~15만 달러 세탁소를 ‘오너 캐리’로 구입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7자매는 그 후 25년간 세탁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자동차와 집을 사고 자녀를 키우는 등 탐스런 성공의 열매를 맺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은 스무디샵·캔디샵·아이스크림가게 등 다른 사업에도 진출, 경제적으로 더욱 탄탄해졌다.
나이 들면서 더욱 닮아 가는 7자매가 세탁소를 하다보니 밖에서 만난 고객이 반갑다고 인사를 해오는데 알고 보니 언니나 동생네 단골고객인 우스운 일도 종종 생긴다. 부친은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세탁소를 하겠다는 자녀는 아직 없으나 셋째 오형숙씨의 사위(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한인인 한국계)가 본래 직업인 변호사를 그만두고 파트너로서 장모의 사업에 합류함으로써 ‘세탁업 3대’의 역사가 열리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매들 중 위 셋은 한인들과, 아래 넷은 타 인종과 결혼했다는 점. 한인과 비한인이 섞여 있는 ‘글로벌 동서’들은 만나면 서로 장난을 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넷째와 다섯째 동서 로이 하웰과 단 욘더는 군대 친구로 동생을 소개한 언니의 배려로 한솥밥을 먹게 됐다. 여섯째와 일곱째 동서 폴 찬드라와 매튜 가르시아는 대학친구. 가르시아는 친구의 여자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당시 여고생이었던 막내를 보고 반해 ‘찜’해 두었다가 나중에 구애, 결혼에 골인했다. 타인종 동서들은 ‘큰형님’ 등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음식을 ‘밥먹듯이’ 먹는다.
이들 7자매는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외길을 달려온 비결과 관련, “경기가 좋을 때는 새새 양복을 사서 빨아 입고, 나쁠 때는 옛날 옷을 늘여 입기 때문에 세탁업이 최고라고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은퇴하기까지는 이 길을 걷걷겠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다짐이다.
손님들의 찌든 일상을 깨끗이 빨아주는 삶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는 이들은 “세탁업은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경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직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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