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컬트 와인’(Cult Wine) “돈 주고도 못 사요”

2005-11-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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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와인’(Cult Wine)이란 것이 있다. 지난 10여년 사이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몇몇 와이너리를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는 특별한 레드 와인을 일컫는 말로, 일반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가격이 무척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와인 애호가들도 맛보기 힘든 와인들이다. 컬트 와인의 대명사로 알려진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을 비롯해 ‘콜긴’(Colgin Cellars), ‘아라우호’(Araujo), ‘할란’(Harlan Estate), ‘헌드레드 에이커’(Hundred Acre), ‘그레이스 패밀리’(Grace Family), ‘젬스톤’(Gemstone) 등이 와인 서클에서 회자되는 컬트 와인들이다.‘부틱 와인’ 혹은 ‘컬트 캡’(캡-카버네 소비뇽의 준말)으로도 불리는 이 와인들은 최고의 토양에서 최고의 기술과 최첨단 테크놀러지를 이용해 만들어진 최상급 와인으로 대개 100% 카버네 소비뇽이거나 카버네를 주 품종으로 한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 와인이다.



스크리밍 이글



할란 에스테이트




젬스톤



콜긴

최고의 토양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
소규모로 생산 희귀성으로 값 비싸

1990년대 초 나타나기 시작해 비평가들의 호들갑스런 찬사에 갑자기 유명해진 이 와인들은 순식간에 추종자들이 줄을 서면서 가격이 병당 100~200달러대로 뛰었는데 소규모로 생산되기 때문에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있는 소수의 고객들과 식당들에만 판매되고 있다.
당연히 이 와인들을 사고 싶어하는 컬렉터들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어쩌다 경매에 등장할 때는 오리지널 가격의 2~6배에 팔리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파티나, 스파고, 발렌티노, 멜리스 등의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2001년산 스크리밍 이글의 경우 2,000~3,200달러까지 호가한다. 따라서 이러한 컬트 와인을 구입한 사람들은 와인을 맛보려는 것이 아니라 소장하고 있음을 자랑하거나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되팔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컬트 와인들이 유명세에 비해 맛에 대한 평가가 거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면 컬트 와인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을까?
‘헌드레드 에이커’의 제이슨 우드브리지는 캐나다 뱅쿠버 출신의 오일과 개스 재벌로 이 분야에서 돈을 가장 아낌없이 투자한 사람으로 꼽힌다.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자연환경까지 바꿀 정도의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젬스톤’의 폴과 수지 프랭크 부부는 LA의 보석업계에서 35년간 터를 닦아온 부자들로 1992년 홀연히 엔시노의 저택을 팔고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나파로 향했다.
‘스크리밍 이글’의 진 필립스는 20년간 나파 밸리에서 부동산업자로 활약하다가 그 자신이 실버레이크 트레일에 면한 오크빌의 55에이커 땅을 구입하고 최고의 재능을 가진 와인메이커 하이디 피터슨 바레트를 고용하면서 새 역사를 창조하였다.
바레트는 각 포도원의 포도와 거기에 어울리는 오크 배럴과의 매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양조법으로 특별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녀의 1994년산 스크리밍 이글은 1998년 경매장에서 600달러에 거래되기 시작, 2000년에는 1,450달러로 뛰어올랐다.
값비싼 와인을 구입하는 미국인들이 지난 5년새 현저하게 증가하면서 컬트 와인의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컬트 와인의 신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에 대해 못 마땅하게 여기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맛보다는 희귀성 때문이라는 비난도 높고, 닷컴 열풍에 빗대어 곧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한 고급 레드와인은 오래 숙성한 뒤의 결과를 보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있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컬트 와인의 신화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 시음해 보니

컬트 와인 이름과 가격

지난 여름 LA타임스에서 와인 전문가 7명이 나파 밸리의 가장 유명한 컬트 캡 시음회를 가졌다. 각 와이너리에 구걸하다시피 어렵사리 구한 1999~2002년산 카버네 19개 종류로, 가격은 55~235달러 짜리까지 총 2,741달러.
놀라운 것은 시음결과 전체적인 평이 ‘별로’라는 것이었다. “맛이 비슷비슷하고 평범하며 너무 강렬하거나 알콜도수가 높다”는 것이 공통의 평가. 숙성이 덜 된 상태에서의 시음이라는 문제가 있긴 했으나 대체로 ‘질에 비해 과대평가’됐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음은 LA 타임스가 시음한 19개 컬트 와인의 이름과 가격이다. 가격은 메일링 리스트의 처음 판매 가격으로 대개는 그보다 훨씬 비싸다.
▲Paul Hobbs 2002, 185달러 ▲Grace Family 2002, 190달러 ▲Gemstone 2002, 95달러 ▲Diamond Creek Vineyards 2002, 175달러 ▲Revana Family Vineyard, 90달러 ▲Hundred Acre, 175달러 ▲Caymus Vineyards Special Selection 2002, 136달러 ▲Stag’s Leap Wine Cellars Cask 23 2001년, 반병짜리 75달러 ▲Shafer Hillside Select 2001, 150달러 ▲Araujo Estate Wines 2001, 185달러 ▲Dunn Vineyards 2001, 70달러 ▲Pride Mountain Vineyards 2001, 115달러 ▲Schrader Beckstoffer 2001, 75달러 ▲Paradigm 2001, 55달러 ▲Dalla Valle Vineyards 2001, 200달러 ▲Colgin 2001, 200달러 ▲Harlan Estate 2000, 235달러 ▲Heitz Wine Cellars 1999, 125달러 ▲Bryant Family Vineyard 1999, 210달러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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