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늦가을의 욕구론

2005-11-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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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 칼럼/이영철 목사(밴쿠버성결교회)

가을 마켓의 유혹자들. 초록 청과물 진열장을 마치 점령군 사령관처럼 평정한 일군의 빨간색들. 비록 에덴 동산 중앙 나무의 실과가 어떤 종류의 열매인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 빛깔의 사과를 보면 웬지 ‘붉은 색의 흙’이란 뜻의 아담이 생각난다.
인간의 본능이 떠오른다. 인간은 사유하며 행동하는 존재다. 행동을 유발하는 이성과 정서, 전자는 판단 기능을 후자는 추진 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 균형이 무너지면 각종 탈선, 비행, 범죄, 비사회적 행위가 나타난다. 이때 이성은 정서가 주로 안정되어 있을 때 작용하는 것으로, 나이, 지위, 직책, 학력 등의 유무를 막론하고 일단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소위 ‘정신없는 사람’, ‘이성 없는 친구’, 심지어 ‘짐승 같은 ...’등등으로 안타까운 말이 따라붙게 된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등이 건강하다는 것은 크고 작던 이 정서가 안정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선진국가 일수록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정책적으로 이 분야를 챙기는 것은 그만큼 정서란 보이지 않은 한 나라의 척도요, 힘이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정서란 장기적인 면에서 민족성이 되기도 하고 국가발전 배경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정서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욕구들에 의해 좌우된다.
먼저, 여기에는 육체적 욕구가 있는데, 식욕과 성욕을 말한다. 빅톨 위고가 그린 소설 레미라제블의 쟝발장은 도덕과 규율에 앞선 식욕에 대한 인간반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비단 결혼이 종족보존의 의미를 넘어서 이해되는 것은 성욕이 그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이 육체적 욕구들이 일정한 기간 내에 적절히 충족되지 아니하면 대부분 이성이 흔들리게 된다. 또한 과도하게 넘치면 과식, 과욕으로 몸과 마음을 망치게되는 소위 부정적 반향(Negative Feedback)이 일어나게 된다.
또 하나는 정신적 욕구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만나 서로 관계성을 맺고 싶어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로빈슨크로스가 되더라도 영원히 홀로 있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또한 인간은 타인과 비교해서 무언가 하나쯤은 자기 자신이 우월하다고 착각하며,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 있었을 때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 관계욕과 우월욕, 소속욕 등 적어도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들 대다수가 정신적 욕구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체적 욕구로 채워진 동물과 같은 삶, 그저 자신만을 위한 정신적 욕구로 채워진 존재로서 일생을 마쳐야만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욕구 채움에 불구하고 때때로 엄습해 오는 공허와 허탈, 권태와 나태, 답보와 포기, 원망과 좌절 등을 경험을 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 하루도 본능적 욕구들 속에 순간적 즐거움과 쾌락으로 자위하며 지내야만 하는 것인가.
이때를 대비해서 창조주는 우리에게 히든카드로 자신의 형상인 인간, 그 본능 속에 무언가 치유책을 주시지 않았을까. 바로 헌신 욕이다! 이는 인간 욕망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욕구로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며, 인간을 다른 생물계와 확연히 구별시켜주는 것이다.
남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어 주는 것, 이웃에게 무언가 베풀고 사는 것, 남의 아픔에 함께 하는 것 등. 그들의 목소리는 밝고 아름다우며 표정에서 미소가 배여 있으며 행동에서 생기가 넘친다. 유명 심리학자들의 통계를 새삼 인용치 않더라도, 이들은 평균적으로 건강하고 오래 산다. 헌신하는 사람들이 남에 대하여 시기하고, 험담하고 투서를 돌리며 모략하는 것을 보았는가. 그들은 미움을 오래 간직하지 않고 사고에 있어 긍정적이다. 이성적 판단에 있어 합리적이고 분명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와 겸손을 유지한다. 그들은 승승의 대인관계 패러다임 속에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며, 자신과 다른 견해에 대해 이해와 수용을 가지고 있다. 이 욕구는 다른 정신적인 욕구들에게 활력을 줄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상처들을 치유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헌신 속에 살아온 마더 테레사님의 시를 떠올려본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마음으로 해도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 비난 한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도움이 필요해서 도와주어도 나중 공격의 화살을 쏠 수 있다.
그래도 도와주어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어도 언젠가 발로 채일 수 있다.
그래도 가진 것중 제일 좋은 것을 주어라.

헌신 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귀한 신비로운 선물이다. 이 아름다운 욕구는 넘치면 넘칠수록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그뿐인가, 삶의 보람과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 해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살아있음에 기쁨과 그 감사를 노래하고. 그리고 환희가 곧 이내 뒤따라옴을 체험하게 된다.
그대, 비록 바쁜 시간, 간밤을 뒤척여야하는 환경, 물질의 빈한함이 있을지라도 잠시나마 지금까지 이 잠겨놓은 욕구를 하나하나 채워보면 어떨까. 밖에는 늦가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록 세찬 비의 커튼이 그대의 눈을 가리고, 삶의 여러 장막들이 앞길을 막을 듯 하지만. 그대여, 아주 작은 말 한 마디의 위로, 짧은 몇 분의 보살핌, 적은 과자 한 봉지의 나눔, 등등. 그 하나라도 일단 시도해 보며 박차고 나감이 어떨까. 아니면 마켓의 빨간 사과 앞을 오늘도 그저 스쳐 지나고만 가겠는가. 아직도 거룩한 욕구는 그대를 부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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