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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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½

2005-11-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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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½

데이빗이 몰던 지프가 모래 속에 쳐박혀 있다.

(The Passenger)

내가 살아 본‘타인의 삶’철학적 명상

권태와 소외와 고독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탈리아의 명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1975년산 실존주의적 스릴러이다. 인간조건과 정치적 상황 속에 갇힌 개인에 관한 고도로 지적이요 통렬한 철학적 서스펜스 영화라고 하겠는데 어떤 대답 없이 끝나고 있다.
내용을 두고 논란과 토론이 있을 법한 영화인데 나라는 조건과 나의 삶이라는 주어진 여건을 탈출하려는 한 개인의 무모한 노력을 염세적이자 세기말적으로 그렸다. 눈부시게 멋있는 스타일을 지녔는데 특히 아프리카의 황량한 정경을 멀리서 찍은 촬영이 불타는 듯이 아름답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 우리에겐 나아갈 곳이 없다는 명제에 관한 감독의 철학적 명상이라고 하겠다.
데이빗 로크(잭 니콜슨)는 북아프리카의 종족분쟁을 취재하기 위해 파견된 기자. 그가 몰던 지프의 바퀴가 모래 속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서(인간조건의 상징) 데이빗은 걷기 시작한다. 데이빗이 묵은 한 허름한 호텔에서 데이빗은 자기와 비슷한 용모와 체격의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이 남자가 급사하면서 데이빗은 남자의 여권사진과 자기 것을 바꾸고 남자의 소지품을 챙긴 뒤 그에게 자기 옷을 입혀 자기 방 침대 위에 누인다. 데이빗은 이제 타인이 된 것이다.
데이빗은 남자의 수첩에 적힌 스케줄을 따라 여행을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무기 밀매상. 데이빗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나 돈까지 받고 죽은 남자 노릇을 한다.
한편 집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데이빗은 여행중 건축학도라는 여자(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축도 감상하면서 대화와 몸을 나눈다. 여자가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밝혀지지 않는데 이 여자는 마치 자기 삶이 없는 사람과도 같다. 데이빗의 아내와 친구 그리고 경찰이 추적하는 가운데 데이빗은 스페인 시골의 한 여인숙에 묵는다. 그리고 열린 창문을 통해 세단을 탄 남자들이 도착하는 장면이 보인다. 조금 있다 총성이 들린다. 젊은 니콜슨의 야성적 지성미가 강렬한데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나온 슈나이더의 모습도 수수께끼처럼 자극적이다. Sony Picture Classics. 10일까지 뉴아트(310-281-8223). 타운 센터6(어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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