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과 음식의 궁합

2005-10-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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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색·질감 서로
비슷한 것끼리 매치

식사와 함께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음식과 와인의 궁합(pairing)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에 관해 “무슨 음식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과 함께 마시면 그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궁합”이라고 말하는 것이 요즘 멋진 조언처럼 유행하고 있다. 물론 음식의 종류나 맛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더 기분 좋은 식사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혀가 느끼는 섬세한 맛의 조화를 중요하게 느끼는 미식가들에게는 그처럼 무책임하고 무식한 조언이 다시없다는 사실 또한 알아두어야겠다. 과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과 와인의 궁합은 공식이 정해진 것처럼 간단했다. 흰살 고기(생선과 닭요리)는 화이트 와인, 붉은색 고기(소고기와 양, 돼지고기)는 레드 와인의 공식이 그것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조리법이 넘나드는 퓨전 요리가 강세를 이루는 요즘, 이렇게 단순한 공식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각종 식재료와 소스가 수백가지 조합으로 뒤섞이고 셰프들마다 매일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내는 세상에서 닭고기 요리는 무슨 와인, 생선요리는 어떤 와인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소믈리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퓨전요리가 많이 개발되는 요즘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의 궁합은 정해진 공식이 없다. 달콤한 디저트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과 매치시키고 씹을 때 거친 질감이 있는 육류 요리에는 텁텁한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 또 담백한 생선요리는 가벼운 화이트 와인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음식이 순하면 와인도 연한 것
강한 맛 음식엔 진한 와인을

같은 지역서 나온 와인·음식·치즈 ‘찰떡궁합’

그러므로 와인&푸드 페어링에 대해서는 궁합의 공식보다 그 공식을 이루게된 기본을 알아두면 와인의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음식과 와인은 서로 맛을 보완해주거나, 함께 먹었을 때 각자의 맛을 더 잘 느끼도록 도와주는 관계여야 한다. 언뜻 느낌으로는 맛이 진한 음식에는 가벼운 와인, 맛이 연한 음식에는 진한 와인이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정반대다. 한쪽이 강하면 다른 한쪽이 밋밋하게 느껴져서 그 맛을 잘 음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음식의 색깔과 와인의 색깔, 또 음식의 맛과 와인의 맛은 비례한다고 보아도 좋다. 즉 맛, 색, 질감이 서로 비슷한 것끼리 좋은 매치를 이룬다는 말이다.
음식의 색깔이 연하면 색이 연한 와인과 어울리고, 음식의 색이 진할수록 진한 색깔의 와인과 어울린다. 그와 비슷한 원리로 맛(양념)이 순한 음식은 연한 맛의 와인, 맛(양념)이 강한 음식은 진한 맛의 와인과 잘 맞는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조리했는가에 따라 무게감 즉 바디(body)가 달라지므로 와인의 선택에서도 바디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담백하게 구운 닭 가슴살이나 생선구이라면 백포도주 중에서도 바디가 가볍고 드라이한 리즐링, 피노 그리, 소비뇽 블랑 같은 것이 잘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닭고기를 크림이나 와인, 버터 소스에 조리했다거나 기름을 많이 두르고 지져낸 생선이라면 바디가 무거운 샤도네와 샤블리, 비오니에 같은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신맛이 많은 음식(샐러드, 나물, 야채요리)은 새콤한 화이트 와인, 단맛이 많은 음식(초컬릿, 케익)은 달짝지근한 디저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때로는 짠 음식도 달콤한 와인을 곁들일 때 더욱 맛있다. 예를 들어 블루치즈나 로크포르치즈와 같이 고리타분한 향과 맛이 강한 치즈를 소테른과 함께 먹어보면 얼마나 기막히게 어울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식재료의 질감도 와인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거친 육질의 스테이크를 씹을 때는 태닌 때문에 입안이 텁텁해지는 레드 와인, 즉 보르도나 카버네 소비뇽이 잘 어울린다.
한편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듯이 와인과 음식도 같은 지역에서 나온 와인과 음식, 치즈가 좋은 궁합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파스타는 이태리 와인(Barolo, Sangiovese 등)과 조화를 이루고 프랑스 남부지역의 코코뱅(Coq au vin)은 보졸레나 론 와인과 잘 맞는다.
아시안 음식 중에서는 일본 음식은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과 매치 시킬 수 있고, 매콤한 타이 음식이나 인도 음식은 쏘는 맛과 후추향이 특이한 ‘스파이스’가 있는 와인을 선택할 때 좋은 궁합을 이룰 수 있다. 화이트 와인 중에서 소비뇽 블랑과 게부르츠트라미너가 그렇고, 레드 와인 중에서는 시라가 조금 싸아한 맛을 갖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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