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한 공부습관(3)

2005-10-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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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라이프 교육칼럼/김두제 뉴라이프아카데미 원장

내가 초등학교를 (60년대 초반) 다닐 때는 집안에 읽은 만한 책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우리집은 만화책과 소설책을 빌려주는 가난한 한 동네의 만화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큰 아이들 중에도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난 그때에 만화가게 덕분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다 끝내고 형/누나들이 읽는 순정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읽기 전에 만화책을 집중적으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만화책 그림을 보았다. 그런데 형들이나 누나들이 큰소리를 내면서 읽는 만화책을 어깨너머로 나도 모르게 따라 열심히 같이 읽었다. 그리고 얼마안가서 혼자 만화책에 나오는 글을 읽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내용을 글을 못 읽는 동네 형/누나들에게 “재미있게” 그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쳐 주었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온갖 재미있는 소리까지 동원해서 설명하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추운 겨울날 따뜻한 햇볕이 드는 양지 바른 곳에서 몇 시간 동안 원맨쇼를 한 기억이 난다.
만화책의 설명하지 않은 것들 까지 이런저런 것을 붙여 실감나게 설명 했는데 아마 그때부터 책을 읽는 습관이 붙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후에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만화책이나 순정소설 보다는 다른 책들을 읽게 되였다. 그때는 대백과 사전(Encyclopedia)이나 고전 소설책들은(동서양 소설책들을 금장식으로 꾸민 책들) “부자”들 집에서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국회의원 비서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집 마루에 있는 커다란 책장에는 그것들이 가득히 꼽혀 있었다. 그 집에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정도 많은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 부자집 “형”은 동네 코흘리개들을 자기 집으로 오게 해서는 자기집이 얼마나 부자이고 대단한지를 종종 자랑한 기억이 난다. 그때는 흑백 TV만 있어도 큰 부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집에는 커다란 TV가 있었다.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이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레슬링) 보고 싶어서 그 집으로 몰려 들어 환호성을 지를 때 난 그 집 마루에 있는 책을 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 집에 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집 형이 좋아하는 만화책과 바꾸어 보는 방법과 때로는 집에 걸려있는 달력을 접어서 딱지로 바꾸어 보는 방법이 있었다.
문제는 책을 빌려 줄 수 있는 때는 그 친구의 아빠가 없을 때였다. 그것도 몰래 빌려 주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오랫동안 빌려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은 친구 아버지가 몇일 간 출장 갈 때가 내겐 마음대로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책을 빌려서 밤새도록 읽고 갖다 주고 또 다른 책을 빌려서 읽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어떤 내용은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짧게 주어진 시간 안에 수십 권의 신간 만화책들과 소설 그리고 친구집에서 빌린 어려운 (초등학교 수준에 너무 높았음) 책과 대 백과사전을 읽다 보면 어떻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읽은 책들이 나에게 많은 공부하는 훈련이 된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취미는 독서가 되었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국어 책에서 나오는 소설책들과 자연 과학책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거의 알았기 때문에 시험 때도 별다르게 “벼락치기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캐나다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들과 내용들이 나올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예를 들어서 교양 과목 중에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를 공부했는데 수업 내용과 숙제가 일반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런데 나에게는 어려서 플르타크 영웅전을 읽으면서 배운 것들이 영어로 다시 복습하는 것 같아서 공부하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들은 지금 까지도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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