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낡은 코르크 바꿔줍니다”

2005-10-05 (수)
크게 작게
펜폴즈의 리코르킹 클리닉

1991년 클리닉 첫 오픈
전세계 와인병원 두고
15년 이상된 레드와인
무료로 갈아 끼워줘

전문가 피터 게이고
세계 각처 방문 서비스
좋은 상태면 와인 추가
새것 교환 인증서 부착


오래된 레드 와인을 열 때면 거의 매번 코르크 마개가 부서지거나 중간에 끊어지는 경험을 한다. 코르크가 젖어있는데다 너무 부드럽고 약해진 상태라 아주 주의해서 돌려도 날카로운 오프너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불과 10년 묵은 와인의 병을 열 때도 코르크가 부서지는데, 수십년 혹은 100년 이상 저장된 와인 병의 코르크는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얼마전 ‘리코르크’(recork)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풀렸다. 호주의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인 펜폴즈(Penfolds)가 정기적으로 ‘리코르킹 클리닉’(Recorking Clinics)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관련 자료들을 취재한 것이다.
리코르크는 말 그대로 코르크를 다시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코르크가 오랫동안 와인에 젖어 있다보면 나무 세포가 약해지고 파괴되면서 미세한 틈새가 생기거나 코르크가 뭉개지기 때문에 새 코르크로 바꾸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30~40년에 한번씩 코르크를 새것으로 교체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15년마다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한번 병을 열면 오리지널 와인으로 볼 수 없다며 리코르크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펜폴즈는 1991년 리코르킹 클리닉을 처음 설립했다. 영국과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상들이 오래된 와인 병의 코르크를 갈아 끼우는 것을 보고, 그들보다 훨씬 철저하고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전문적인 와인 병원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수집 가치가 있는 최상급 적포도주(그레인지, Grange 등)를 많이 생산하는 펜폴즈는 이 클리닉을 통해 15년 이상 된 와인의 코르크를 새것으로 갈아주는 무료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무려 4만병 이상을 리코르크했다.
리코르크는 당연히 전문가의 손을 통해서만 해야 한다.
펜폴즈의 리코르크는 전문가 피터 게이고(Peter Gago)가 도맡아서 하고 있으며 호주에서뿐 아니라 펜폴즈 그레인지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각처로 날아가 서비스 해주는 이동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지난 9월21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리코르킹 클리닉이 열렸고 29일엔 뉴욕에서 있었으며 오는 10월18일엔 캐나다 터론토에서 또 열린다.
리코르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펜폴즈 클리닉의 경우, 피터 게이고에게 와인을 가져가면 우선 병의 겉 상태로 판단해 리코르크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를 결정한다. 리코르크 하기로 결정하면 코르크를 열고 와인의 소유주와 함께 와인의 맛을 본다.
와인이 아직 더 많이 숙성할 만큼 충분히 상태가 좋으면 와인을 조금 더 집어넣은 뒤 새 코르크로 봉한다.
그리고 펜폴즈와 크리스티 경매하우스가 보증하는 인증서를 붙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발생한다. ‘조금 더 집어넣는 와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코르크의 미세한 틈새로 증발되어 양이 줄어든다. 와인 병 속에 공기가 들어찬 부분을 울라지(Ullage)라고 하는데, 이 울라지가 커지는 것이다. 울라지가 크다는 것은 공기가 많다는 것으로 와인이 산화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오래된 와인의 상태를 판단할 때 코르크와 코르크를 싸고 있는 알루미늄 포일의 상태, 그리고 울라지를 보아 짐작한다.
리코르크 클리닉에서 와인을 조금 더 집어넣는 이유는 이 울라지를 줄이고, 맛본 만큼의 양도 채워넣기 위한 것이다.(새로 넣는 와인 양은 750ml 한병의 1~2%에 불과하다)
이때 어떤 와인을 집어넣느냐는 전문가에 따라 다르다. 펜폴즈에서는 새로운 빈티지의 와인을 넣는다. 그러면 즉각적으로 맛과 향이 살아나 전혀 새로운 와인이 창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올 봄 마카오에서 1961년산(20세기 보르도 최고의 해로 평가받는다) 샤토 팔머 500병을 리코르크한 샤토 측은 똑같은 61년산 와인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이러한 ‘코르크 치료’를 순수 와인애호가들은 절대 반대한다. 특히 새로운 빈티지의 와인을 넣으면 원래의 와인 맛을 잃는다며 오리지널 상태대로 보관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리코르크를 원하고 있으며 와인 경매에서는 오히려 병원에 다녀온 와인을 선호하는 와인상들도 적지 않다.
오래된 와인의 경우 값은 엄청나게 비싸지만 병을 열 때까지는 그 상태를 알 수가 없는데 리코르크 한 것은 전문가에 의해 이미 품질이 보증됐기 때문이다.



오래된 와인은 코르크가 약해져 부서지기 쉽다.




펜폴즈의 최고급 적포도주 그레인지. 가격이 250~300달러를 호가한다.


펜폴즈 클리닉은 15년 이상된 그레인지를 무료로 리코르크 해준다.

<정숙희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