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내가 가 본 뉴올리언스

2005-10-0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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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수년 동안 각종의 학술대회 참가 차 뉴올리언스를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대규모의 학술대회가 이 곳에서 자주 개최되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학자나 문인을 막론하고 이 초생달 모양의 도시를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카트리나 태풍은 천재지변이나 사상 최악의 정부 대책부재가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뉴올리언스는 연간 70억달러의 관광수입을 잃게 되었으며 피해복구에 들어갈 625억달러를 제하고도 미국 연간 국민 총생산액 중 1,300억달러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 하구에 위치한 세계 제 5대항으로 19세기 미국 산업주의 발달의 발상지이다. 뉴욕 다음으로 전국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유통시키며 미국 원유의 30%와 천연개스의 20%, 어패류의 33%를 생산해 왔다.
New Orleans는 18세기 당시 프랑스의 집정관이었던 필립 올리언스 백작(Philippe, Duke of Orleans)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이른봄 축제인 Mardi Gras(불어로 Fat Tuesday란 뜻)는 프랑스의 전통 가톨릭 축제의 마지막날로 참회를 하기 위해 모이는 Ash Wednesday 전날이 변형된, 뉴올리언스 특유의 축제이다. 뉴올리언스인의 대다수가 가톨릭교인인 것은 바로 프랑스, 스페인 문화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1803년 루이지애나를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단안으로, 영국과의 전쟁으로 재정적으로 허덕이던 나폴레옹으로부터 단돈 1,500만달러를 주고 샀던 것으로 1812년 주로 승격되었다. 루이지애나는 1699~1762년 동안 프랑스령이었으나 루이 15세가 1763년에 사촌인 스페인의 찰스 3세에게 주어 1763~1800년 동안 스페인령이 되었다가 1801년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를 사들임으로써 다시 1801~1803년 동안 프랑스령이 되었었다.
Mark Twain의 소설 The Adventures of Tom Sawyer, Huckleberry Finn과 Life on the Mississippi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미시시피강이 그 흙탕물과 함께 이 초생달 시티의 동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단아한 정원지대(garden district)로 곱게 단장된 하얀색 이층집들이 그 정돈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이 도시의 심장부인 French Quarters는 다행히도 이번 태풍에서 큰 피해는 면했다는 소식이다. 쇠로 떡갈나무 잎을 수놓은 듯한 우아하고 품위 있는 주택의 난간들은 파리의 주택들의 난간을 연상케 했으며, 갖가지 상점들의 주소 표지판 아래에는 아직도 스페인어 표지판이 간혹 남아 있었다.
미국의 언어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루이지애나 Creole’은 백인, 인디안, 흑인의 언어가 혼합된 독특한 영어이다. 1800년대에 이르러 뉴올리언스가 목화, 설탕, 담배무역의 세계적인 교역장으로 탈바꿈함과 동시에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영국, 독일과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문화가 융화된 뉴올리언스 특유의 문화와 생활양식, 음식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Crawfish Etouffe, seafood gumbo, jambalaya 등은 뉴올리언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혼합 해산물 특미들이다.
희곡작가 Tennesee Williams는 퓰리처상 수상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첫 장면에서 프렌치 쿼터의 거리를 ‘퇴폐적인 매력’을 지닌 거리로 표현했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William Faulkner는 그의 첫 소설 ‘Soldier’s Pay’와 뉴올리언스를 무대로 한 ‘Absalom, Absalom’을 바로 이 곳에서 집필했다. 필자가 Faulkner 서점에 갔을 때엔 그의 체취가 물씬 날 것같은 책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또한 뉴올리언스 태생의 현존 미스터리 소설작가 Anne Rice는 이 곳에서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집필했고 프랑스의 화가 Edgar Degas도 1870년대에 이 곳에서 ‘The Cotton Exchange at New Orleans’ 등 여러 미술작품을 그렸다.
또한 뉴올리언스는 재즈 음악의 본산지이다. 흑인들의 애절한 노래가락을 전 세계에 알린 루이 암스트롱이 바로 이 곳에서 재즈 인생을 시작했다.

클라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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