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서 사업가로 ‘인생역전’
2005-07-20 (수)
■사우스 LA출신 맥킨리 ‘파란만장한 삶’
20세때 총기살인 강도혐의로 종신형 선고
18년만에 누명 벗고 출소… 청소원‘새 삶’
보상금으로 하와이서 ATM사업‘성공시대’
사우스 LA 출신인 드웨인 맥킨리(44)는 현재 하와이에서 알짜부자로 산다. 그가 젊은 시절 ‘꿈에라도 가보고 싶었던 하와이’에서 수백만달러대의 부동산과 현금을 낳아주는 ATM(현금자동인출기)을 수십대 갖고 있다. 날마다 고급 벤츠로 절경의 오하우섬을 유람하며 비즈니스를 운영한다. 아직도 그는 ‘잘 풀려나가는 현실’이 꿈이 아닌가 자신을 꼬집어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맥킨리는 불과 5년반 전만 해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 죄수로 아무런 희망 없이 캘리포니아주 중범 교도소에 있었다. 지난 1980년 오렌지시티의 버거킹 햄버거 식당 야간 매니저 월터 호레이스 벨 주니어(당시 19세)를 총격 살해한 강도범으로 당시 20세의 그가 체포됐던 것. 1982년 끝난 재판에서 4명의 증인이 그를 진범으로 증언함으로써 맥킨리는 사형을 간신히 벗어난 종신형 선고를 받았다.
우범지역에서 불우하게 성장하면서 갱단 범죄 등 여러 전과가 있었지만 버거킹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었던 그는 18년간 폴솜 교도소, 샌 퀀틴 교도소 등 5군데 중범 교도소를 전전하며 자살미수, 폐결핵 감염, 동료 죄수의 폭행 등에 시달렸다. 그런 그가 1999년 당시 버거킹 강도살해사건에 연루됐던 두 명의 죄수들이 뜻밖에 진범을 털어놓으면서 행로가 급반전됐다.
검찰과 수사관들의 재수사와 판사의 유죄판결 번복의 절차 끝에 그는 2000년 1월28일 운전면허증이나 소셜시큐리티 번호, 또 당장 갈아입을 옷 한벌, 칫솔 하나 없는 빈 몸뚱이로 감옥 문을 걸어나왔다.
싸구려 모텔에 묵으면서 청소원으로 그는 새 인생을 시작했다. 18년간을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맥킨리는 감옥에서 기독교 신앙을 만난 것과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나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그를 원망과 분노, 복수심에서 탈피하게 했다.
18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신앙의 힘으로 견뎌냈다는 그의 간증거리는 그를 점점 양지로 끌어냈고 게다가 2002년 오렌지시 당국이 보상금으로 170만달러를 그에게 지급했다.
변호사비와 경비를 제외한 100만달러로 그는 좋은 투자처를 찾아 나섰고 심사숙고 끝에 ATM 머신을 한 대씩 소유하기 시작했다. 대당 5,000달러 정도의 ATM 머신을 설치할 적소를 찾아 건물주나 비즈니스 오너와 계약을 맺고 ATM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비즈니스는 그의 겸손을 갖춘 성실함, 네트웍을 깔고 중간 사례를 아끼지 않는 수완 등으로 수개월 안에 20개로 늘어났다. 어느덧 매달 순수입이 1만달러를 넘어서게 됐다.
새로 가정을 꾸린 그는 신혼여행 겸 갔던 하와이에 매료되어 완전 이주를 결심했다. 남가주의 ATM을 모두 팔고 2003년 하와이에 정착한 그는 관광객은 훨씬 더 많고 ATM은 별로 없다는 사실에 착안, 다시 ATM 설치에 나섰다. 이혼의 아픔도 겪고 재산도 반으로 분할되었지만 혼자 뛰는 그가 운영하는 ATM은 빅아일랜드까지 진출하며 다시 20개로 늘어났다. 이번 달 수입만도 3만달러가 넘었다.
19일 LA타임스 1면에 보도된 맥킨리의 학력은 교도소 안에서 겨우 마친 고교과정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비즈니스를 제대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일반 복권 당첨자들이 흔히 겪는 ‘횡재 낭비 후 빈털터리’의 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부동산에도 적절히 투자, 알토란 자산을 증식시키고 있다.
<이정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