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부모가 쓰는 자녀교육 체험담

2005-05-2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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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비운 것이 약

원하는 대학 못갔지만 명문 법과 대학원 졸업했으니…

드디어 딸이 대학원 졸업을 했다.
LSAT 시험 점수가 잘 나왔다고 폴짝거리던 모습이랑, 오라고 손짓하는 여러 명문 법대들을 펼쳐놓고 열심히 재어보던 순간들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멋진 가운에 모자를 쓰고 무대 위를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고맙고 고맙구나. 정말 고 맙다.)
돌아보면 딸은 그저 착하고 순하기만 할 뿐,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어 나를 흥분시켜 준 기억이 없는, 그저 꾸벅꾸벅 학교 숙제 충실히 해 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GPA나 SAT 점수를 잘 받아보려고 애를 써도 수학이나 과학이 받쳐주질 않으니 답답하고, 그렇다고 밤을 새우며 남보다 더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은 또 너무 여려 애기 같으니 경쟁이 심한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해낼까 싶지도 않고-. (그래, 욕심을 버리자. 니 수준에 맞는 학교에 가서 즐거운 대학 생활이나 해라. 명문 대학을 가지 않을 거라면 지금 이 성적으로도 충분하다.) 11학년을 지나면서 마음속으로 희망을 접었었다.
나의 무관심 속에서 SAT를 치고 입학 원서를 쓰고. 결과는 당연히 원하는 대학의 허가서를 받을 수 없었다. 예상했던 터라 나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는데, 딸은 그게 아니었던지 대학원 입학 허가서를 받아놓고 나서 고백을 했다.
“엄마, 그때 나 많이 울었었어. 친구들은 모두 동부 명문 대학으로 갔는데, 나만 엘에이에 떨어져서. 근데 엄마는 실망도 안하고 좋아하는 게 너무 섭섭해서 ‘I’m not stupid’을 보여주려고 열심히 공부했어.”
내가 마음을 비운 것이 이렇게 좋은 약이 되어 줄줄 정말 몰랐었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남을 도와주려고 하면, 도와 줄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 나라에서 인정하여 실어주는 힘. 그걸 가지도록 해 보아라.”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어떤 게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삶인지 자꾸 강조해주었었는데, 철이 들면서 아이의 머리 속에는 어렴풋이 자기의 미래 모습이 그려지고, 그게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구체화되면서 공부할 이유도 함께 생기게 된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내가 여기에 없지?”
“당연하지. 엄마 아빠가 없으면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겠니?”
지금의 자기가 있도록 해준 부모님께 감사해하는 서툰 한국말을, 이 철없는 엄마가 못 알아듣고 주책스런 말을 했다.
“그게 아니고…, 엄마 아빠 땜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단 말이야.”
“아하, 알긴 아는구나. 그래. 그래. 모두다 이 엄마 아빠 덕인 것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되느니.”
졸업 가운을 벗어들고 우리들은 모두 너무 행복해서 가슴 가득 채워지는 웃음을 웃었다.
(하나님, 굽이굽이 내 딸과 함께 걸어가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

류민희
<전 서니힐스고교 한인학부모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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