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아 니콜라스 2세 소유 ‘희귀 와인’소더비 경매장에

2004-12-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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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게 숨어 살았지만 우아한 맛 그대로

1890년 황제 별장에 완벽한 와이너리 저장고 만들어
스탈린이 맛에 감동 아무도 손 못대게 해 모두 보관
2차대전때 독일군이 옮겼다가 패전 함께 원래 집으로

러시아의 니콜라스 2세 황제를 위해 저장되어 있던 수백병의 와인들이 100여년의 세월을 견디고 최근 소더비 경매장에 등장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와인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희귀한 와인들이 혁명과 스탈린과 세계대전과 공산주의를 살아남아 숨어있던 곳은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던 우크라이나 흑해 부근 ‘마산드라’(Massandra) 와이너리의 지하 저장고.
마산드라 와이너리는 1890년대 황제를 위해 지어진 포도원으로 이곳의 와인 저장고는 산을 파서 길이 500피트, 깊이는 지하 200피트까지 내려가는 터널 속에 위치해 있어 와인 저장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현재 그곳에는 거의 100만병이나 되는 와인들이 숨쉬고 있다는데 주로 그 지역에서 생산된 디저트 와인과 마데이라, 머스캣, 포트 등의 주정강화 와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 와인들이 오늘까지 견뎌온 역사를 보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와이너리는 터널에 벽돌담을 쌓아 컬렉션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1920년 붉은 군대가 장악했을 때 이 저장고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당시 소련의 통치자들은 이 와인 컬렉션을 손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922년 이 와인들을 맛본 스탈린은 그 맛에 크게 감동되어 절대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전역의 황제 와인 셀라에서 발견된 와인들은 모두 마산드라로 가져다 보관하게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와인은 황제에게 진상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최상품일뿐더러 보관 상태도 완벽했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경매에 부쳐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와이너리는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침공으로 다시 위협을 받았다. 독일군이 와인병에 레이블을 다시 붙인 후 다른 장소로 옮겨버린 것. 그러나 1945년 패전과 함께 그 와인들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오래된 와인의 맛은 어떨까?
경매에 나온 와인들을 맛본 소더비 와인부 디렉터 스티븐 몰더에 따르면 와인들의 높은 당분 함량 덕분에 “놀랍도록 진하고 섬세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1888년산 마산드라 피노 그리는 2병에 3,600~4,60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나왔는데 “그 달고 부드러운 바닐라의 맛이 마치 케익의 재료들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고 그는 감격했다. 이날 경매에서 팔린 최고가 와인은 1913년산 크론 브라더스의 세르시알-베르델로-알비요(Kron Brothers Sercial-Verdelho-Albillo)로 병당 8,000달러에 거래됐다.
그러나 꼭 팔릴 것으로 기대됐던 1880년산 ‘세븐스 헤븐’(Seventh Heaven)은 병당 2,800달러에 나왔으나 5병중 1병만 팔렸다. 이 와인은 마산드라의 첫 와인 매스터였던 프린스 레브 골리친이 만든 달고 진한 디저트 와인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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